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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by Outis

“녀석은 어쩌고 있나?”


“아, 과장님.”


모니터를 통해 소년을 감시하고 있던 데이비스(Davis) 요원은 풍채 좋은 50대 중반 남자의 등장에 급히 일어나 경례를 했다. 과장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인사를 받은 뒤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데이비스 요원도 과장의 시선을 따라 모니터로 눈을 옮기며 말했다.


“현재 지적재산 절도 및 중국으로의 유출 혐의로 바이 첸(Bai Chen) 교수를 감시 중입니다. 오늘로 9일째인데 아직 수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속 소년은 깍지 낀 손을 배에 올리고 눈을 감고서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음악소리와 칼질 소리,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칭얼거리는 아기 울음소리. 어느 평범한 가정의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 연상되는 소리였다.

점점 커지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멀어지자,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손만 움직여 키보드를 두드렸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안다는 것처럼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없는 움직임이었다. 조금 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가까워져 왔다.


[쉬- 쉬- 착하지 아가.]


소리의 배경이 첸 가의 거실에서 아기 침실로 바뀌었다는 걸 눈치챈 데이비스는 급히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또 저런 쓸데없는 짓을! 바이 첸에게 집중하라고 그렇게 얘길 했건만. 당장 주의를 주겠습니다.”


과장은 빨간 버튼으로 향하는 데이비스의 손을 부드럽게 저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지켜보도록 하지.”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쉿, 아가야 울지 말렴)...]


소년은 손을 다시 배에 올리고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과장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데이비스를 돌아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정말 수고가 많군. 교대라고 해도 24시간 감시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특히 이번 주에는 파키스탄 반군 급습 작전까지 지원하느라 훨씬 더 고단했을 텐데.”


“아, 아닙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을 들은 데이비스는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과장은 그의 꾀죄죄한 몰골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고생했어. 오늘은 그만 들어가 쉬도록 하게.”


“예? 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일도 없고, 어차피 다음 교대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잖나. A의 감시는 내가 대신 해줌세.”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양 말고. 이번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 데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게. 주말인데 가끔은 일찍 들어가서 가족들과 시간도 좀 보내고 해야지. 이제 곧 출산 예정일이지? 이러다간 나중에 아내한테 두고두고 구박받아.”


한사코 거절하던 데이비스는 임신 중인 아내의 얘기가 나오자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과장이 자기 아기의 예정일을 기억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평소엔 엄한 과장도 실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런 그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말씀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얼른 가 봐. 아, 그리고 이번 국장님 보고는 내가 해주겠네.”


“아닙니다, 과장님. 그건 제 일...”


“특별 보너스 얘기를 본인 입으로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아..! 감사합니다!”


데이비스 요원은 감격에 젖은 얼굴로 과장에게 경례를 했다.


“얼른 들어가 봐.”


데이비스가 떠나고 방에 혼자 남은 과장은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가끔 손을 뻗어 키보드를 두드릴 뿐, 여전히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앙상한 손가락. 2년 전 처음 마주한 날에 비해 소년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과장은 책상 위에 놓인, 아까 데이비스 요원이 누르려하던 빨간 버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소년이 일부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자해 행위를 할 경우를 대비한 장치였다. 버튼을 누르면 소년의 연수를 자극해 고통을 느끼게 만들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신속한 진압을 위해 그의 숨통을 끊는 것도 가능했다.

어설프게 잘못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인지 버튼은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닦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버튼에 덕지덕지 묻은 손때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눌러졌는지를 보여주었다.


과장은 화면 속 소년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정신은 그때 그대로인가? 그런 세월을 보내고도... 대단하군.”





삐-


“국장님, 팰런(Fallon) 과장이 왔습니다.”


“음. 들어오라고 해.”


그레이엄(Graham) CSA 국장의 비서 엘루이즈(Eloise)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과장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마티네즈(Martinez) 양.”


과장은 엘루이즈에게 인사를 한 뒤, 국장의 집무실 앞으로 가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와.”


그레이엄 국장은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60대 초반인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어서 나이에 비해 더 늙어 보였다. 동그란 금테 안경은 어째서인지 그의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꽉 다문 얇은 입술 주변에는 잔주름이 세로로 나있었다. 그 외에는 평범한 외모와 체격이었지만, 눈과 입매가 주는 날카롭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인상은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충분했다.

남들이 자신을 어려워하는 걸 잘 알고 있는 국장은 인상을 바꾸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즐겼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가까이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싫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숨기는가에 점수를 매기곤 했다. 이러한 놀음을 더 길게,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그는 권력을 갈망했다.


런 그레이엄 국장이 속을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은 팰런 과장이 유일했다. 국장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과장을 맞이했다.


“여, 지미(Jimmy)! 며칠 못 본 사이에 더 살이 찐 거 아냐?”


“국장님, 저희 아내한테는 비밀입니다. 양배추 수프는 정말 끔찍하거든요.”


“하하하, 자 앉지.”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과장을 데리고 소파에 가 앉았다.


“그래. 보고는 핑계일 거고, 뭔가?”


에둘러 말하는 걸 싫어하는 국장은 평소처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과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었음에도 뜻하는 바가 명확한 과장의 한마디에 국장의 눈과 입이 가늘어졌다. 거진 거절이나 다름없는 어색한 침묵. 과장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2년입니다.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만,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제 한계입니다, 국장님.”


“한계라니.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국장의 입가에는 여전히 고집이 단단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러나 과장도 뜻을 굽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공판도 더 이상 연장했다간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될 겁니다. 이미 유가족들이 야단이에요. 세상이 예전 같지 않아서 주류 미디어만 입다물게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만약 놈의 신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 뒷감당을 어쩌시렵니까? 지금껏 우리가 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요? 앞으로 한참 더 올라가셔야 할 텐데, 이런 일로 발목 잡히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자신의 미래가 언급되자 국장은 그제야 조금씩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음. 아쉽군. 아주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이지.”


“정말 그렇습니다.”


“진짜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제 오래 못 버틸 거 같습니다.”


“흥! 실력에 비해서 몸이 너무 비루하군. 정말 아까워. 뇌만 기계에 붙여서 조종하고 싶을 정도야.”


“...... 그렇군요.”


일이 뭔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 과장은 부디 이대로 대화가 마무리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적중했고,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국장이 눈을 빛내며 무릎을 쳤다.


“그놈이 아비스와 인연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마지막으로 일 하나만 더 시키도록 해.”


“... 일이라 하시면..?”


“아비스의 컴퓨터 안에 있던 ‘그것’의 잠금 해제 말이야. ‘LoS’와 관련되어 있다는.”


과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국장님, 그건 극비 자료입니다. 그런 걸 녀석에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중요한 증거 자료에 만약 손상이라도 입히게 되면 어쩌시려고요.”


“어차피 열지도 못할 상자라면 안에 뭐가 들었든 아무 의미 없잖은가. 그리고 비밀 유출은 걱정할 거 없어. 놈은 사형이니까.”


“사형..! 이미 정해진 겁니까?”


“응? 무슨 소린가, 자네?”


과장의 퀭한 눈에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국장의 그 미소가 비쳤다.


“당연히 그렇게 만드는 거지.”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away above the chimney tops(모든 괴로움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곳, 굴뚝 꼭대기보다도 높은 곳에).

That’s where you’ll find me(그곳에서 나를 만날 수 있어)!

Somewhere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


밝은 빛 속에서 벤은 서서히 고통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그는 자신을 어루만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문득 이게 죽음의 평온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 난 아직 죽을 수 없어!’


벤은 얼른 눈을 떴다.


“... 어?”


그의 눈에 비친 건 평소 상상해 왔던 사후세계, 즉 천국이나 지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집과 구조가 똑같아서 매우 익숙한, 이것저것 부서져 있고 엉망인 아랫집, 현실이었다.

묘하게 늘어지고 비틀려있던 공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자신을 공격한 소년이 아직도 있다는 걸 깨닫고 벤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지옥이네.’


아픔이 사라져서 기뻤고, 아직 죽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벤은 우울해졌다. 그래도 이젠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한번 거의 죽었다 살아나서일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자신을 갖고 놀던 소년의 얼굴에 더 이상 여유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잔뜩 경계하며 노려보는 소년의 눈에는 공포심마저 보였다.


“너 대체 누구야?”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누가 할 말을 누가 하고 있는 건지, 벤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 이거 참, 그러는 너야말로 누군데 자꾸...”


“LoS의 잔당인가?”


“..? 엘, 뭐?”


그때였다. 경찰관 네 명이 일사불란하게 집으로 들어와 두 사람에게 총을 겨누었다.


“경찰이다, 손들어!”


벤은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여기요! 제가 신고한 사람입니다! 이 녀석이 범인...”


“움직이지 마! 양손 들고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쏜다!”


벤은 움찔하며 손을 위로 쭉 뻗었다.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경찰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자신은 죄가 없으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벤은 얌전히 지시에 따랐다. 이제 경찰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문득 경찰관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을 상대로 괜찮을까?’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총을 들고 소리치는데도 소년은 눈썹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거기! 손 들라니까!”


거듭되는 경찰의 요구에 소년은 한숨을 푹 쉬더니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같잖은 것들이, 방해하지 마!”


“윽!”


“억!”


붉게 변한 소년의 눈을 본 경찰관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쓰러졌다.


‘아, 역시...’


벤은 허탈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힘이 빠져 내려갔던 그의 팔이 소년의 매서운 눈빛 하나에 다시 번쩍 올라갔다. 그걸 본 소년의 붉은 눈이 다시 차분한 색으로 바뀌었다. 소년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 정도 능력인데 LoS였으면 지금쯤 나도 무사하지 못했으려나. 그럼 나처럼 초대받은 이레귤러인가? 대체 어디서...”


소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서 있는 바닥에 갑자기 싱크홀같이 커다란 검은 구멍이 생겼다. 그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긴 팔 두 개가 튀어나와 소년의 입과 다리를 붙잡았다.


“읍?!”


붙잡힌 소년은 어찌해 볼 틈도 없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소년의 눈이 다급히 벤을 찾았다. 소년은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손을 치우고 다른 손을 벤에게 뻗으며 외쳤다.


“기다려! 반드시 다시, 읍읍!”


소년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이 틀어막힌 채 구멍에 삼켜졌다. 소년을 삼킨 구멍이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룻바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인 밤. 어둠 속에 혼자 남은 벤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등뒤로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나타났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벤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곧바로 목덜미를 세게 맞고 쓰러졌다.

하얀 두건을 쓴 여자가 좁아져가는 그의 시야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여... 보?’





“LoS 교를 알고 있나? ‘Liberator of Souls’, 영혼의 해방자라는 사이비 종교네. 아비스는 그들을 위해 일했던 해커였고.”


“사이비 종교?”


소년의 물음에 팰런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바꾼 뒤 자신들이 지향하는 ‘천국’에서 영원무궁토록 사는 것이었지. 놈들은 이것을 ‘영혼의 진화’라고 불렀어.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인류는 몰살시키려 했고.”


“그런..! 그럼 벤... 아비스는 지금 어디에..?”


“행방불명이야. 이미 놈들에게 납치당했을지도 모르지. 아직 쓸모가 있을 테니 죽지는 않았겠지만.”


“그럴 수가...”


“A, 벤을 구하고 싶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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