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bar)?”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곳이야.”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는 창가. 한 침대에 모인 두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였다.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얘기를.
“술이 뭔데?”
“에탄올이 섞여 있는 음료. 마시면 뇌기능이 떨어진다나 봐.”
“그런 걸 왜 마셔?”
“지옥에 살고 있으니까? 힘든 일이나 슬픈 일을 잊으려고.”
“흐음~ 그럼 천국에선 필요 없는 거 아냐?”
숨 쉬는 행위와 같이 당연한 믿음에서 나온 합리적 의문. 정오의 태양처럼 망설임 없는 한 소년의 눈빛이 다른 소년을 향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 표정이 좋아 보였어. 사이좋게 여럿이 모여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거든...”
바 얘기를 꺼낸 다른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그 눈빛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그의 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자 의문을 제기한 소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아지트로 적합하네.”
“어?”
“천국에서도 우리만의 장소는 필요하잖아?”
“그럼...”
“만들자. ‘우리’를 위한 비밀 장소.”
태양과도 같은 환한 소년의 미소가 또 하나의 자신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몰아냈다. 소년과 그의 거울상(mirror image), 둘은 쌍둥이였다.
“정말?”
“응. 말해 봐. 그 ‘바’라는 곳은 어떻게 생겼어?”
“아 그게, 취급하는 술이나 손님에 따라 달라.”
“그럼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하자. 마리(Mary)를 위해서.”
“... 꼭 그렇게 해야 해?”
“마리가 싫다면서 안 오면 어떡해?”
“... 알았어. 그럼 칵테일 바로 할까?”
“칵테일?”
“술에 뭐 이거 저거 섞은 거. 여자들이 좋아한다던데.”
“그거 좋네. 그렇게 하자.”
과묵한 달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소년의 비밀 계획이 무르익어갔다.
“이름은 뭘로 할까?”
두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불을 걷어버리고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박혀 있는 영롱한 진주, 그 오묘한 빛이 그들의 초록색 눈동자에 어렸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둘은 서로를 향해 외쳤다.
“문 버스트(Moon Burst)!”
그러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틀어막고 옆침대를 힐끔거리며 키득거렸다. 이름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달이 그들의 머리 위로 은은한 미소를 내려주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뒤따라오지 않고 멍하니 위를 쳐다보고 있는 소년을 이상히 여긴 남자가 물었다.
“아니. 되게 낡은 간판이다 싶어서.”
“아. 어차피 간판을 보고 올 손님은 없으니까요. 들어오시죠.”
“... 그야 그렇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소년은 먼저 가게로 들어간 남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발 밑에 조심하세요. 조금 지저분해요.”
“조금?”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고 엉망인 가게 안을 죽 둘러보았다. 전구가 다 깨져서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데다, 여기저기 부서진 나무 조각이나 날카로운 병조각이 늘어져 있어서 주의하면서 걷지 않으면 다칠 것 같았다. 의자는 전부 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테이블은 다리를 몽땅 잃고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난리법석인 이곳에서 그나마 구색을 갖추고 있는 건 바테이블과 그 뒤의 선반뿐이었다. 소년은 깨진 유리병만 즐비한 선반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바 같은데, 이래 가지고 손님이 오기나 하겠어?”
“필요한 게 있으면 오겠죠? 그쪽도 이렇게 왔잖아요.”
남자는 제일 안쪽 구석으로 가더니 너덜너덜한 카펫 한 귀퉁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밑에 숨겨져 있던, 지하로 통하는 비밀문이 나왔다. 그는 문을 들어 올려 막대기로 고정시킨 다음 손짓으로 소년을 불렀다.
‘뭐가 이렇게 수상쩍어? 비밀 조직의 아지트란 건가. 설마 함정은 아니겠지.’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지상으로 통하는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벽에 달린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음습하고 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저 앞에 문 하나가 보였다. 문 너머에는 쭉 일자로 뻗은 환한 복도가 있었다. 남자는 복도 좌우에 있는 수많은 문을 지나쳐 복도 맨 끝까지 소년을 데려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벽에 노크를 했다.
“접니다.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러자 마치 색연필 껍질이 돌돌돌 벗겨지는 것처럼 벽이 대각선으로 열렸다. 그걸 보고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 안쪽을 잘근 씹었다. 완전히 사라졌던 벽은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다시 생겨났다.
벽 안쪽은 아까 그 복도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문이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 문 앞에는 문지기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어두운 톤의 피부색은 그의 표정에 무게감을 더했고, 그의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그는 검은 드레드 헤어를 뒤로 한데 묶었고 등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었는데, 어깨 위로 칼손잡이가 보였다. 사이즈가 너무 작은 게 아닐까 싶은 검은색 반팔 티셔츠는 탄탄한 가슴 근육과 팔근육에 의해 거열형을 받는 중이었고, 카모 바지와 고동색 군화는 전투적일 것 같은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었다.
소년은 눈을 바삐 움직여 처음 보는 장소와 등장인물을 살폈다. 그런데 안내역을 맡았던 늑대탈을 쓴 남자가 갑자기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자, 이제 저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뭐? 나 혼자서?”
“네. 제 임무는 여기까지 당신을 모시고 오는 거라서요.”
소년은 방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중간에 있던 늑대탈이 물러난 지금, 그는 떡대 문지기와 1대 1로 대치한 상황에 처했다. 문지기는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을 더 일그러뜨리고는 소년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야 원. 들어가란 건지 말란 건지.’
그때, 안쪽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손님이야. 정중히 모셔.”
문지기가 표정을 한껏 누그러뜨리며 옆으로 비켜났다. 소년은 문지기와 늑대탈을 쓴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조심스레 문으로 다가갔다. 소년이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늑대탈을 쓴 남자가 말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소년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뿌연 연기로 가득 찬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이 손을 휘휘 저어 보았지만 매캐한 연기는 흐늘거리며 돌아와 소년의 목을 간지럽혔다.
“콜록콜록.”
“아, 실례. 버릇이 돼서.”
아까 그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뿌연 연기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소년은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만 기다려. 금방 나아질 거야.”
그 말대로 연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소파 위에 반쯤 누워 있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땋아 내린 붉은 머리카락, 빛나는 노란색 눈동자, 검은 안대, 그리고 긴 담뱃대.
‘제법인데?’
남자는 긴장한 소년을 보고 씩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촛불처럼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소년의 회청색 눈을 응시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더니, 과연 그렇군. 영락없는 저승사자야.”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는 듯 소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네. 그러는 당신은 뭐지? 괴물?”
남자가 눈을 번뜩였다.
“보이는 건가?”
“대충?”
남자는 껄껄 웃으며 담뱃대를 든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이런. 역시 끄지 말 걸 그랬나.”
“미성년자 앞에서 흡연은 좀 그렇지 않아?”
애매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남자의 붉은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미성년이라? 네 영혼은 그렇지 않다는데?”
“영혼?”
소년은 코웃음을 쳤다.
“코어(core)겠지. 그런 걸 영혼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름 같은 건 상관없잖아. ‘우리’에겐 그게 전부니까.”
남자는 재를 다 털고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존재의 근원이자 유일한 증명, 그게 영혼이 아니면 뭔데? 그쪽은 달라?”
소년은 속으로 남자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시스템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라더니. 놀라운걸? 누가 들으면 기뻐하겠어.”
“누구? 네가 ‘최종 보스’라 부르는 존재?”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불 꺼진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무서워? 마음만 먹으면 더 난장판을 벌일 수도 있었을 텐데. 죽을 뻔한 상황에서조차 힘을 억누르고 있었다며?”
“...... 적어도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아직 모르는 일 투성이라.”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거고, 그렇지?”
남자는 입에서 담뱃대를 뺐다. 소년은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생각했다.
‘아까 그 연기는 일종의 재밍(jamming). 이곳의 구조도 그렇고, 이자는 분명 많은 걸 알고 있어. 아마 내가 알고 싶은 것까지도... 물론 공짜로 알려주진 않겠지. 거래를 하기엔 내 입장이 너무 불리해. 적어도 평등한 관계에서 하지 않으면... 정신 차려, 집중하자. 저쪽이 원하는 걸 먼저 알아내서 흥정을 해야 해.’
“그래, 맞아.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을 리 없고, 당신도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부른 거겠지? 그게 뭐야?”
“이야, 얘기가 빨라서 좋네.”
남자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느릿느릿 테이블을 돌아 걸으면서 말했다.
“천국을 쥐락펴락하는 시스템, 그 중심에는 트리니티(Trinity)가 있어.”
“트리니티?”
남자의 담뱃대 끝이 작은 원 세 개를 그렸다.
“세 개의 달. 그중 하나가 현재 이 천국을 지배하고 있지.”
“셋 중 하나? 지배?”
“놈들은 그걸 ‘시스터’라고 부르며 받드는 모양이더군.”
“시스터...”
소년은 새로이 주어진 정보를 끼워 넣어 사고의 회로를 돌렸다.
‘역시 LoS가 배후란 거군. 그런데 왜 ‘마더(Mother)’가 아닌 시스터지? 새로운 구심점이란 건가? 그럼 ‘파더(Father)’는?’
결론을 내리기엔 정보가 한참 부족했다. 소년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좀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눈빛, 남자는 미끼에 이끌려 덫으로 다가오는 사냥감을 지켜보는 희열을 숨긴 채 능청을 떨었다.
“왜, 너무 적어? 처음 온 손님이라 나름 큰 선심 쓴 건데.”
“아직 퍼즐이 다 맞춰지지 않았어.”
“이 이상은 공짜로는 안 돼.”
“원하는 게 뭐야?”
남자는 파란색 구체가 든 소년의 점퍼 주머니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시스템과 싸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 우리도 회심의 일격을 먹일 뭔가가 필요하달까? 이를테면 네가 가지고 있는 그거 말이야...”
소년은 남자의 눈이 한결같이 주머니를 향해 있는 걸 보고 주머니에서 구체를 꺼내어 들었다.
“이거?”
“와, 과연 시스터가 직접 부리는 디스포저의 코어답네. 더럽게 아름답지 않아?”
남자는 구체가 내뿜는 푸른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소년도 그를 따라 구체를 보았다. 지금 보니 구체 자체는 투명하고 그 안에 있는 어떤 문양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세 개의 달이었다.
남자의 말마따나 아름답긴 한데, 소년은 좀 의아했다. 이게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소년은 눈을 꼭 감았다. 지금껏 큐브를 통해 몇몇 코어에 든 정보를 분석해 봤지만 많은 것을 알아내진 못했었다. 이대로 있어 봤자 알아낼 수 있는 건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심을 굳힌 그는 눈을 뜨고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좋아. 너와 거래를 하지.”
남자는 소년이 던진 구체를 받아서 바로 뒤에 있는 소파로 던져버렸다.
“현명한 선택이야.”
현명한 선택. 아까 그 늑대탈을 쓴 남자도 현명히 판단하라고 했었다. 현명하든 아니든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다면 소년은 상관없었다. 이미 진창에 구르는 건 익숙했으므로.
“자, 그럼 간다. 잘 받아.”
남자는 담뱃대로 자신의 안대를 툭툭 쳤다. 그러자 텅 빈 수정구슬이 노래하는 것처럼 맑은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기 시작했고, 메아리끼리 공명하며 파동이 점점 세졌다. 정신을 쏙 빼놓을 것만 같은 노랫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지더니, 한 순간 압축되어 하나의 큐브로 변했다. 큐브는 3차원 형태를 띤 작은 무언가가 빽빽이 모여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문자였다.
공중에 둥둥 떠있는 큐브를 보고 소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큐브가 망가진 이상 직접 받을 수밖에 없겠네.’
소년은 눈을 감았다. 공기가 떠받드는 것처럼 그의 몸이 편안히 떠올랐고, 큐브가 사뿐히 날아가 소년의 가슴속으로 들어갔다. 큐브와 닿는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소년의 몸이 뒤로 젖혔다. 소년의 눈이 번쩍 뜨였고, 큐브를 구성하고 있던 미지의 푸른 문자들이 그의 눈동자 위로 빠르게 지나갔다.
잠시 후 눈동자에서 모든 문자가 사라지고 소년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땅에 발이 닿고 나서도 소년은 여전히 얼이 나간 상태였다.
“괜찮아?”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그가 대답을 하려고 막 입을 연 순간, 소년의 눈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으윽..!”
소년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손을 짚고서 얕은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남자가 다가와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너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소년은 이를 부득 갈면서 남자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남자는 쓰러진 소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뱃대를 쥔 손에 턱을 괴고서 웃었다.
“엄마가 안 가르쳐 주셨어? 낯선 사람이 주는 사탕은 받아먹지 말라고.”
“하, 하아, 하...”
소년은 이제 대답할 여력도 없이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바닥의 카펫을 움켜쥐고서 그 감각에 집중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서 웅웅 울렸다.
“내가 원했던 건 너였거든. 멋대로 디스포저의 코어라고 오해한 건 네 잘못이야. 제대로 다 확인하고 거래를 했어야지.”
남자는 소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죽이지는 않아. 네가 우리에게 필요한 채로 남는 한.”
그는 소년의 눈이 감기는 걸 보고 중얼거렸다.
“넌 과연 손님으로 남을까, 아님 쓸만한 재료가 될까. 어느 쪽이든 남는 장사네.”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문지기가 들어왔다. 남자는 문지기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끌고 가.”
“여어, 팰런 국장. 그동안 잘 지내셨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인사가 국장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에 전화기가 멋대로 받아버린 전화, 아르고스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뭐 알아낸 거라도?”
국장은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르고스는 국장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해댔다.
“저번에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그쪽 요원을 빌려준다고 했던 거, 아직 유효해?”
국장은 불편한 심사를 감추고는 애써 차분하게 대답했다.
“물론이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럼 이번에 한 명만 빌릴게. 아 참, 아무나 말고 내가 지정하는 사람으로 해줘.”
“... 그러지. 어디에 쓸 건지 물어도 되겠나?”
“사람 하나 빼내야 하거든.”
“사람..? 누구를?”
슬슬 고개를 쳐드는 불길한 예감. 국장은 초조히 아르고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당신네들한테 붙잡혀 있는 사람.”
제임스 팰런 국장, 그의 예감은 늘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