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려거든 나 보기에 좋은 거 말고 남들에게 좋은 걸 만들어 팔아라.
굳이 '경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기본 중의 기본 상식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쓰는 글은 탈락이다. 시장성도 없거니와, 예술성은 더더욱 없다.
그럼 경제적, 사회적 이득 말고 무슨 다른 소용이라도 있을까? 하다 못해 쓰는 행위가 내게 즐거움이라도 주려나?
처음에는 그랬다. 마구 떠오르는 휘발성 생각들을 잡아 문자로 굳혀 놓는 작업은 묘한 성취감을 주었다.
그러다 좀 보는 눈이란 게 생겼는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쓴 걸 보는 게 괴로워졌다. 이딴 걸 쓰려고 한 편에 6-8시간을 허비하나. 미쳤구나. 이런 자원낭비를 하다니. 차라리 그 시간을 다른 데 쓰지.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자주 멈춰 섰다. 주저앉기도 하고, 아예 뒤돌아서 잊으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동안 계속 써온 관성이 작용한 탓인지, 마저 끝내고 싶다는 미련이 남은 건지, 아니면 끝까지 쓰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죄책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해서인지, 나는 어리석게도 계속 키보드 앞에 앉았다.
대체 왜 계속할까.
"이딴 걸 하느라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데도."
유치원에 들어가야 하는 막내는 아직 말을 잘 못한다. 말을 못 하니 어린이집에서도 벙어리. 친구는 당연 없다.
다들 아니라고 위로해 주지만 난 알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진작에 애를 붙잡고 책도 읽어 주고, 같이 놀면서 말을 걸어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중요한 발달시기에 난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3년 전부터 뭔가 했더라면, 적극적으로 애를 돌봤더라면.
3년. 딱 내가 집에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덤빈 시기와 일치한다.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무작정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럴 깜냥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기에, 감히 그걸로 돈을 벌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답답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어딘가 '나'로 있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다물어. 아니어도, 틀려도 무조건 맞다고 해. 지쳐도 웃어, 억울해도 웃어, 맞아도 웃어, 웃어, 웃어, 웃어. 속 넓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착한 백치 연기를 13년 동안 해왔다. 다 내 선택이었으니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가 만든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도 내 선택이었다. 그 탈출구로 나는 글을 택했다.
글 쓰는 건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일이었다. 애들이 잠든 동안에만 써야 하니 하루에 2시간 이하로 자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글을 쓸 때는 비로소 나로 있을 수 있었으므로.
그러다가 큰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사람에 따라서는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멘탈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그간 살아온 인생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그즈음 깨달은 내 글의 수준과 그에 대한 실망까지 더해져서 내 정신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져 갔다. 정상이라면 괴로움을 더하는 글쓰기를 멈추어야 할 텐데, 나는 도리어 더 빠져들었다. 글을 쓰겠다는 핑계로 일부러 더 안 먹고 안 잤다.
'계속 이러다 보면 죽겠지.'
그랬다. 나는 죽으려고 글을 썼다. 한때 답답한 인생의 돌파구로 삼았던 글쓰기는 이때부터 나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한심한 인생이 어찌 그리 욕심도 많은지. 죽으려는 주제에 난 내가 쓰는 글에 의미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게 그래도 뭐라도 됐으면 싶어서, 끝까지는 쓰자 싶었다. 그래서 인기 없는 내 글이 더 슬프고 미웠다. 어차피 노력해도 형편없으니까, 죽을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생각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조금 치유되었고, 많은 것을 얻었으며 또 잃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 그중 하나요, 지금 내 아이가 힘든 것이 그 하나다.
자책과 후회가 밀려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저울질을 한다. 과연 계속 쓰는 게 맞는 걸까. 이게 과연 쓰임이 있을까...
역시 모르겠다. 그저 아는 건, 내가 지금 이걸 쓰고 있다는 사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