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나는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 같아.
더 이상 연기하지 못하는 나만큼 쓸모없는 게 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난 주역이 아니어서.
조명도 비추지 않는 무대 구석에 쭈그리고 있어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떠오르지 않아.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는 내 모습 따위.
다행이다. 떠오르는 게 뒤돌아선 내 빈 손이어서.
이제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게 되어서.
당신과 만나 나는 날개를 품었어. 그러나 곧 알게 되었지.
나는 원래부터 날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의 외면 속에 가짜 날개마저 부서져 버렸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해. 당신을 맘껏 미워할 수 있게 되어서.
모든 걸 내려놓을 만큼, 그래도 될 만큼.
뒤늦게 당신이 증명하려 애쓰는 애정의 온도는
딱 줄 끊어지기 전까지 춤추었던 세월만큼 날 움직이게 할 거야.
다행이다. 대충 맞아떨어져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