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침묵 위에 다시 말을 건네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나만의 글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기다림을 깨운 건, 둘째 아들이었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라는 벽 앞에 섰다. 그 벽을 부수려 하기보다, 그저 나의 언어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글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이 문장을 읽게 되더라도
‘엄마의 진심은 여기에 있었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너를 위해 책 한 권 써서 선물해 줄게.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언하듯 내면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양한 글로써 생각을 나누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하지만 2019년 작가 신청에 낙방한 뒤, 서랍 속에 세 편의 글만 남긴 채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흩어졌다.
소소하게 블로그를 시작하고, 혼잣말처럼 끄적이며 여러 글쓰기 시도를 이어갔다. 워낙 뭐든 느린 편이라 글쓰기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 것 같았다. AI의 도움으로 다양한 쓰기에 도전할 용기를 얻었지만, 그만큼 더 큰 좌절감도 맛보았다. 그럼에도 오래 잠들어 있던 펜은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최근, 군대에 가있는 아들이 휴가를 나와 말했다.
“엄마, 저도 글을 잘 써보고 싶어요.”
그 말이 참 묘했다. 그때의 내 약속이 시간의 굴레를 돌아 아들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웃으며 내 브런치 글을 건넸다.
“엄마도 여전히 쓰고 있어.”
이곳은 그렇게 이어진 약속의 기록으로 시작되었다. 관계와 시간, 예술과 감정, 그리고 성장에 대한 작은 기록들. 어쩌면 글쓰기는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핑계로, 결국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런데 잘 쓰고 싶다는 마음만큼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책도 거의 읽지 않았고, 어휘는 고여 있었다. 그래서 늘 막연했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읽는 일’이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문자를 해독하고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는 걸.
그 깨달음 이후로야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잘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한 문장, 한 단락, 하나의 주제를 쓸 때마다 그 안에 어떤 어휘를 선택할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한지 이제는 안다.
그래서 더 욕심내지 않는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담백하고 솔직한 문장을 쓰고 싶다. 맑고 투명한 글 안에 나의 생각을 자연스레 담고 싶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많다. 그래서 나는 서툴지만, 내 작은 날갯짓으로 조금씩 나아가려 한다. 부끄러운 글임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따뜻한 흔적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신 이곳에서 나는 다시, 글쓰기의 꾸준함을 배워가고 싶다.
그리고 오늘, 다시금 나에게 주문처럼 되뇐다.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진심이 닿는다면 그걸로 충분해.”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나의 속도대로, 아름다운 글밭을 산책하고 배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