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12 : 감정의 기준

나를 통과한 감정에 대하여

by 수안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일하는 자리에서 한동안 헤매던 꿈이 남아 있었다.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다만 예전처럼 일의 상황이 기존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더 빨리 움직이기보다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헤맨다는 건 지금의 혼돈 속에서 다시 방향을 맞추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설명 가능한 언어가 주는 위안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조금 더 안도한다. 이 감정이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는 것, 의지의 부족이나 성격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설명 가능한 언어가 되는 순간, 새로운 지식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앎은 우리가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감정의 근원을 짚어내며 위안을 주기도 한다.

이해할 수 있다는 감각은 사람을 덜 고립되게 만든다. ‘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지’ ‘어떤 조건에서 반복되는지’ 설명받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막연한 혼란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과학의 언어는 중요하다. 감정이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구조와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자신만을 탓하던 사람을 자기를 객관화하는 관찰의 자리로 옮겨 놓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설명은 되었지만, 그 감정이 왜 나에게 이런 의미였는지, 왜 이 시점에 이렇게 흔들렸는지는 여전히 남는다.



악보와 연주 사이에서

과학이 제시하는 감정의 언어는 잘 정리된 악보와 닮아 있다. 어떤 음이 언제 시작되고, 어디에서 높아지고, 어디에서 반복되는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 악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정은 더 이상 무작위가 아니다. 원인과 구조를 가진 하나의 흐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악보가 곧 음악은 아니다.

같은 악보라도 누가, 어떤 상태로, 어떤 시간을 지나 연주하느냐에 따라 음악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감정도 그렇다. 설명된 구조가 같다고 해서 그 감정이 남긴 울림까지 같을 수는 없다.

어떤 감정은 이론으로 이해되었음에도 여전히 마음에 남고, 어떤 감정은 설명된 뒤에야 비로소 잦아들거나 가라앉는다. 차이는 악보에 있지 않다. 그 감정을 통과한 사람의 시간에 있다.

그래서 설명 가능한 언어는 감정을 정리해 주지만, 그 감정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장면이었는지까지 대신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해했다’는 말과 ‘살아냈다’는 말이 서로 다른 언어라는 걸 알게 된다.



경험이 기준이 되는 순간

설명 가능한 언어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언어가 곧바로 나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기준이 된 것은 언제나 숙성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조금 늦게 도착했다. 말을 많이 듣고, 설명을 충분히 이해한 뒤가 아니라 그 감정을 실제로 통과한 다음이었다. 흔들려보고, 실수해 보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시간을 지나서야 같은 말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언어는 정확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닿을 자리가 생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설명보다 경험을 앞세우게 되었다기보다, 경험을 통과한 뒤에야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말도 그랬다. 아직 충분히 흔들려보지 않았을 때, 그 말은 나에게 기술처럼 들렸다. 그러나 흔들림을 지나온 뒤에는 조절이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착하는 상태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감정을 빨리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설명으로 앞서가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감정이 내 삶에서 어떤 장면이었는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그렇게 남은 것만이 나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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