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12.5 : 간식이라는 의식

by 수안


나는 자주 같은 공간을 찾게 된다. 특별해서라기보다는, 머물기 괜찮아서다.

주차가 수월하고, 자리가 넓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가기에도 부담이 없고, 지인을 만나기에도 어색하지 않다. 무엇보다 그 공간에는 도착하자마자 긴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있다.

주차가 수월하다는 건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다. 어디에 세울지, 막히진 않을지, 서둘러야 하진 않을지 그런 사소한 긴장이 미리 사라진다는 뜻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몸은 이미 판단을 끝낸다. 아, 여기서는 괜찮아도 되겠구나.

그렇게 몸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상태에서 나는 거의 늘 같은 간식을 고른다. 아이스커피와 애플파이다.

아이스커피는 맛을 기대해서 마시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의 커피도 아니다. 다만 차갑고 쌉쌀한 자극이 흐려졌던 정신의 윤곽을 다시 또렷하게 만든다. 머리를 써도 무리가 없겠다는 감각이 되살아난다.

애플파이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맛은 달콤하면서도 약간 새콤하다. 뜨겁지 않고, 무겁지 않다. 허기를 채우기보다는 입안의 감각을 한 번 흔들어 깨운다. 그래서인지 하나로는 부족해 거의 매번 두 개를 먹게 된다.

그 조합을 먹고 나면 에너지가 채워지지만 들뜨지는 않고, 주위를 의식하되 몸이 더 느슨해지지는 않는다. 정신은 열려 있지만 날카로워지지도 않는다. 과하지 않은 상태로 지금 이 자리에 머물 수 있게 된다.

그 상태에서 나는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를 준비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이 간식들은 배를 채우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이미 편안해진 몸과 여전히 열려 있는 의식 사이에서 생각이 무리 없이 이어지도록 돕는 선택에 가깝다.

주차가 해결되며 몸이 먼저 풀리고, 아이스커피로 정신의 초점이 돌아오고, 애플파이는 내려져있던 내 안의 어떤 감각의 스위치를 다시 켠다. 이때부터 나는 비로소 생각을 더 한껏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심리 상태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 조합은 의식처럼 반복되지만 미리 계획된 적은 없다.

그저 내 몸과 감정이 어디까지 풀려도 되는지, 어디서부터 다시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간식은 그 판단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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