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14.5 : 노래가 먼저 켜질 때

by 수안


가끔 말보다 먼저 노래가 켜질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떠올리려 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어떤 곡이 또렷하게 재생되는 순간이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누군가와 함께 이동하던 중, 갑자기 BTS의 〈앙팡맨〉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상황과 어울리는지 판단할 틈도 없이 그 노래의 정서가 먼저 켜졌다.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불쾌하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 지금 내 마음이 이거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갑자기 노래가 들려요.”

그리고 별생각 없이 덧붙였다.

“앞으로 잘되실 것 같아요.”


그 말이 예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위로나 조언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의 내 감정이 그 노래만큼의 거리와 온도로 정리된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과거의 기억 속 노래 한 곡이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떠올랐다. 어느 시절 한때 즐겨 불렀던, 기억의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곡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이 특정인에게서만 일어났다는 사실도 지금에 와서야 조금 이해가 된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예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현실적인 사건 이후 우리는 이전과 다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연락은 가능하지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단순한 물리적인 거리라기보다 관계의 좌표가 잠시 비어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이런 조건에서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든 설명이나 개입처럼 느껴질 수 있고, 어떤 말도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공중에 떠버릴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언어 대신 음악이 먼저 켜진 것은.


음악은 위치를 묻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마음을 그대로 머무르게 할 뿐이다. 그 순간의 내 감정은 설명보다는 유지가 필요했고, 개입보다는 거리 조절이 필요했다. 노래는 그 조건을 가장 무리 없이 만족시키는 형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감정을 더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증명이나 설득도 아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 끝에서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마음”을 조용히 내미는 고백에 가깝다.


아마도 내 감정은 언어로 정리되기 전에 이미 음악이라는 요약본을 꺼내 드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하기엔 복잡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엔 분명할 때, 노래 한 곡이 대신 켜진다. 이건 특별한 능력도, 반드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사건도 아니다. 다만 감정을 오래 눌러두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다치지 않게 처리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는 사람이다. 과장하지 않기 위해, 상대를 밀어붙이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너무 앞세우지 않기 위해서다.

그 숨 고르기의 자리에서 내 안의 플레이리스트 중 어느 한 곡의 재생 버튼이 눌러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이 경험을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기록해 두는 쪽을 택한다. 왜 그 노래였는지는 몰라도 괜찮다. 그 순간, 말 대신 음악이 내 감정을 대신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순간은 또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 지금 내 마음이 이 노래구나” 하고 조용히 알아차릴 것이다. 그 정도면 내 감정은 이미 제 할 말을 다 한 셈이니까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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