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왜 어떤 날, 나를 붙잡는가
질문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질문 앞에서 편안해지는 날과,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는 날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은 생각을 열어주고,
어떤 말은 오히려 입을 닫게 만든다.
단번에 답이 떠오를 때도 있고,
생각은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요즘 나는 그 차이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 전, 어린 왕자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하루에 하나씩 물음이 놓여 있는 다이어리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것들은 대체로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기보다는,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누군가가 호기심 어린 관심으로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모든 물음에 답해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이 먼저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몇백 개의 질문들 중에서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한두 개면 충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 다이어리 속 질문들은 한 방향으로만 깊지는 않았다. 시간을 들여 돌아봐야 하는 묵직한 질문과, 바로 대답을 떠올릴 수 있는 문장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야?”라는 물음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로 떠올릴 수 있었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라는 문장은 나를 잠시 생각에 머물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를 설명해야 할 것 같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불러와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고 그 질문들이 불편하기만 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물음에도 속도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루에 열 개보다, 하루에 한두 개의 질문이 나를 더 오래 붙잡아두는 날이 있다.
이런 질문들은 스스로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느리게 기다려줄 때가 좋았다. 오늘은 건너뛰어도 괜찮고, 지금은 말이 없어도 괜찮다는 얼굴로 그 자리에 있을 때. 그럴 때 질문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듯했고,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더 바라보게 만들었다.
버거워지는 순간은 질문이 깊어서가 아니라,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들 때다.
어떤 질문을 만나면 괜히 허리를 바로 세우게 된다. 잘 말해야 할 것 같고, 지금의 나를 정리해서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미 지친다.
“감정이 어땠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의외로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어떤 감정인지 고르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그날의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감정이 이미 너무 여러 갈래로 흘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이 너무 추상적일수록 대답을 미루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르겠다기보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주 구체적일 때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장면을 정확히 요구하거나, 이유를 바로 설명하라고 요구받는 것 같을 때다. 그럴 땐 질문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지나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질문의 난이도보다, 그 말이 놓이는 자리를 먼저 본다.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지, 말을 아껴도 괜찮을 것 같은지,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두어줄 것 같은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나는 그 말을 접어둔다. 오늘은 넘기고, 내일 다시 볼 수 있도록. 이런 말들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닿지 않는다. 바로 떠오르는 대답도 있고, 하루가 지나서야 생각나는 것도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말은 쉽게 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잘 고르는 사람보다, 이런 질문 앞에서 나를 먼저 살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어떤 감정이었어?” 대신, 그날의 장면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말로.
“왜 그렇게 느꼈어?” 대신,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행 좋아해?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아?
누구랑 갔어?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뭐야?
이 말들은 잘 말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하나만 말해도 되고, 길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웃고 넘어가도 괜찮다.
이상하게도 이런 말 앞에서는 입이 조금 가벼워진다. 감정을 고르지 않아도 되고, 지금의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떠오르는 장면 하나면 충분하다.
이 방식은 사람을 덜 소모시킨다. 나를 끌어내기보다, 내가 있는 쪽으로 한 발 다가오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질문은 지나치게 많을 필요도, 깊을 필요도 없었다. 그날의 나에게 맞으면 됐다.
어떤 날은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야?”라는 말 하나면 충분했고,
어떤 날은
“오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순간이 있었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이 말들은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질문과 대답을 무조건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이런 말 앞에서 덜 긴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질문이 오래 남는 순간은, 질문이 거창하거나 잘 만들어졌을 때가 아니다. 그 말을 건넨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먼저 느껴질 때다.
얼마 전, 어떤 전시를 앞두고 지인분께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잘 지내시죠?^^
이번 전시에 오실 계획이신지요.
시간 맞으면 뵈어요.”
돌아온 답엔 같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심전심^^”
일정을 조율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약속을 미리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이 상대의 상황을 이미 예감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건네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이런 질문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의 따뜻함을 드러내는 말이라는 것을. 때로는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라는 뜻에 가깝다.
어린 왕자 식 질문들이 떠오른 것도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 말들은 정해진 답을 원하거나, 누군가를 시험하지 않는다. 답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은 넘겨도 괜찮다.
그래서 하루에 한두 개 정도의 다이어리 속 질문은 나를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들고, 하루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한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지금을 살피게 하고, 앞으로를 상상하게 한다.
나는 이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지 않는다. 대신 어떤 말 앞에서 몸이 덜 긴장하는지 살핀다. 말을 아껴도 괜찮을 것 같은지, 오늘의 나를 그대로 두어줄 것 같은지.
감정 인문학은 감정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이런 말을 곁에 두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 하나로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된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질문을 남겨두고 싶다.
요즘,
누군가에게서 안부처럼 건네진 말이 있었나요?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얼굴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