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14 : AI의 질문과 감정 실험

질문이 인간의 감정 구조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by 수안


서른 개의 질문을 통과하며, M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배워온 시간을 발견했다.




감정은 어떻게 배워졌는가


감정에 관한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기쁨이나 슬픔이 어떤 의미였는지보다, 그 감정이 어떤 조건에서 허용되었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몇몇 장면들은 기억 속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특별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감정이 놓일 자리가 늘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야단맞아서 생긴 울음은 빨리 안으로 삼켜야만 했고, 이유를 설명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감정은 말로 풀기보다 빠르게 정리되기를 요구받는 쪽에 가까웠다.

기준에서 벗어나면 우선은 혼났고, 왜 그랬는지를 묻기보다는 상황을 끝내는 것이 먼저였다. 아직 판단이 미숙한 나이였지만, 감정은 그 나이를 고려해주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상태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이 환경에서 배운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참는 요령이었다. 울음을 멈추는 타이밍, 목소리를 낮추는 방법,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습관 같은 것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감정은 여전히 있었고, 다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감정은 설명되지 않은 채 몸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질문에 답하며 이 지점이 반복해서 드러났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묻는 질문보다,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기억이 더 많이 떠올랐다.

감정을 배운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 났다. 누군가는 감정을 말로 풀며 배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감정을 정리하며 배웠을 것이다. M은 분명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후의 선택들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이어졌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상황을 평온하게 만드는 쪽을 먼저 택했고,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이것은 성격이라기보다 오래전에 익숙해진 생존 방식에 가까웠다.



눌러 담은 감정의 방향


M은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는 쪽이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의 기억을 따라가면, 감정은 표현의 대상이라기보다 관리해야 할 무언가에 가까웠다.

비교는 늘 더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동했다. 말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준은 분명했고, 그 기준에 닿지 못한다는 감각은 계속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 시기 가장 익숙해진 감정은 열등감이나 분노라기보다 ‘말하지 않는 습관’이었다.

감정을 설명할 언어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지만, 대신 얌전함과 무던함은 비교적 빨리 익혔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태도, 요란하지 않은 존재감, 자리를 지키는 방식. 그것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았다.

그래서 감정은 안으로 모였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방향만 바꿔 남았다. 울음은 혼자서 처리했고, 불편함은 스스로 정리했다. 대화를 통해 풀기보다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질문에 답하며 이 패턴은 더 분명해졌다. 감정이 폭발했던 기억보다 감정을 눌러 담았던 순간들이 더 많이 등장했다. 그때의 선택은 미숙함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식이었다.

말하지 않는 습관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는 종종 공백을 만들었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 M은 그 공백에 오래 머물렀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은 음악 듣기 같은 대중문화 감상, 일기 쓰기, 친구와의 대화나 편지 쓰기, 가끔은 책 읽기였다.

그럼에도 어떤 감정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향을 못 찾고 마음속 어딘가를 떠돌아다녔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꿔 나타났고,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눌러 담기 어려워졌다. 그 지점에서 다음의 전환이 시작된다.



선택의 순간과 감정의 전환점


감정의 방향이 처음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느낀 시기는 삶의 역할이 늘어난 이후였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M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돌보기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 새벽까지 깨어있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보다는 질타를 먼저 경험하면서 자책과 위축의 시기를 보냈다.

그전까지 감정은 참거나 정리하면 넘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어긋나도, 버티면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책임이 생기자 그 방식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감정을 숨긴 채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피로와 불안, 초조함은 말로 설명되지 않아도 매일 반복해서 몸에 남았다. 그 과정에서 M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가 무사히 지나갔다고 여겼고, 모든 것들이 평화를 되찾았다고 생각되던 시기에 등장한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의 스펙트럼은 온갖 감정들이 뒤섞이며 일어나는 각성에 가까웠다. 감정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감정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감각이 생겼다. 감정을 눌러 두는 쪽을 택하면 삶 전체가 함께 억눌려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자각했다.

이 변화는 계획된 선택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흐름에 가까웠다. 어떤 결단을 내렸다기보다는 이전의 방식대로는 더 이상 삶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고 보는 편이 맞다.

질문에 답하며 이 지점은 더 분명해졌다. M은 감정을 더 잘 다루고 싶어 졌고, 더 이상 자신이 겪어온 감정을 거부하거나 미뤄둘 수 없다는 그 감각에 대해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 시기를 지나며 남은 감정은 후회보다는 안도에 가까웠고, 공허보다는 확신에 가까워져 갔다. 서로 다른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양가적인 감정이 자연스러워진 시점이었다.

이 전환 이후, 관계와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큰 변화는 늘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음의 관찰은 이전과는 달라진 그 작은 감정의 각도 변화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


관계 속에서 M의 감정 패턴은 대체로 평화를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갈등을 키우기보다 정리하려 했고,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 한 발 물러섰다. 관계가 유지되는 방식이 무엇인지 일찍부터 몸으로 배운 사람의 태도였다.

그래서 관계의 기류가 불안정해질 때에도 감정적으로 부딪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했고, 그것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엔 임의로 관계의 거리를 조절했다. 말로 풀 수 있을 때는 바로 말했고, 대화가 감정을 더 키울 것 같을 때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는 쪽을 택했다. 감정을 방치하기보다는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이 패턴은 대부분의 관계에서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하며 드러난 것은, 이 방식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유독 예외가 된 관계가 있었다. 거리 두기가 잘 작동하지 않았고, 정리하려 해도 복합적인 감정들이 얽혀버리거나 유독 한 가지 감정이 깊게 흘러나와버렸다. M은 그런 감정 앞에서만큼은 기존의 대응 방식을 유지하지 못했다.

질문은 이 지점을 집요하게 드러냈다. 왜 그 감정 안에서는 평화 쪽으로 향하던 관성이 무너졌는지, 왜 그 감정만은 눌러 담을 수 없었는지 답변을 따라가다 보니 문제는 예외가 허용되지 않았던 너무 완벽했던 감정구조의 탓이었음에 다다랐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감정구조의 절묘한 맞물림이 가져온 아름다운 불협화음이라고 해야 할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은 M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감정 관리 방식의 한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래서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그 경험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했고, 감정을 사유로 전환하며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이 지점에서 M은 자신의 감정 패턴을 더 이상 미화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방식이 자신을 보호했고, 어떤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지도 비로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위치



서른 개의 질문을 모두 지나온 뒤, M이 도달한 지점은 극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정리의 상태에 가까웠다.

더 견디는 단계라기보다는 이미 지나온 감정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게 된 상태. 모든 감정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감정의 위치는 분명해졌다.

“그래도 괜찮다”는 말과 “이제 알 것 같다”는 감각이 함께 존재하는 시기. 과거의 어떤 시기와도 정확히 닮지 않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 지금이다.

이 질문들은 M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M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글은 치유의 기록도, 극복의 서사도 아니다. 질문을 통과하며 드러난 하나의 감정 이력에 가깝다.

마지막 질문에 남은 문장은 아주 단순했다.

힘들지?
고생 많다.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이 문장은 과거의 M에게 건네는 말이면서, 지금의 M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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