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창작자들이 말하는 ‘번개 맞은 듯한 순간’이라는 건, 사실 신비한 무엇이 내려온 장면이 아니라 인식과 감각과 사고가 하나의 형식으로 딱 맞물리는 지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몸이 먼저 반응하고, 전류 같았다거나 충격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 뇌와 감각이 동시에 “아, 이거다” 하고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이건 창작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지점에 가깝다.
고리들 화가가 2006년 처음으로 ‘눈동자에 우주’라는 콘셉트를 떠올렸을 때,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온몸에 충격이 왔다고 했다는 말을 나는 꽤 오래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일 리 없다. 오히려 오래 쌓여 있던 질문과 감각, 말로는 설명되지 않던 사유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이미지로 일시에 수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왜 하필 고양이의 눈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더 흥미롭다. 눈동자에 우주라는 개념을 떠올린 뒤, 초반에 그린 이미지가 ‘고양이의 눈에 비친 달’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대표적인 움벨트의 존재다.
인간과 전혀 다른 시각 구조, 밤에 활성화되는 감각,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인식. 이미 그 자체로 ‘타자의 지각’을 상징하는 존재다. 여기에 눈이라는 인식의 창, 달이라는 닿을 수 없는 대상, 반사된 빛이 더해진다. 이 조합은 말 그대로 움벨트의 첫 이미지화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금 놀라워진다.
고양이의 눈 → 달 → 움벨트 시리즈
이 흐름이 너무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눈동자에 우주를 넣는다는 발상은 인식 안에 세계가 들어온다는 선언이고, 고양이 눈에 비친 달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세계 인식이다.
이후 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움벨트 시리즈는 “같은 세계를 보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건 나중에 움벨트라는 개념을 덧붙인 게 아니라, 이미 개념이 그림으로 먼저 태어나 있었던 상태다. 그래서일까. 관련 자료를 접할수록 이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예감이 든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더 확실해진다.
움벨트 시리즈는 식물이나 풀벌레가 등장한 순간이 아니라, ‘눈동자에 우주’라는 콘셉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면 흐름은 이렇다.
눈동자에 우주 → 이미 ‘인식의 세계’
고양이 눈에 비친 달 → 종의 감각 차이
식물과 벌레 → 비인간 존재의 시간과 시선
결국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겹쳐진 여러 세계, 다중 움벨트가 점점 더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난 것뿐이다. 시리즈명이 나중에 붙었을 뿐, 작업은 이미 그 자리에 가 있었다. 이게 이 작업의 진짜 강점 아닐까.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원형과 ‘6’이라는 형식이 떠올랐다. 1996년 중앙비엔날레 대상작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각각의 둥근 원 안의 중앙에 작은 구멍이 뚫린 여섯 개의 원형.
‘의미를 연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숫자 놀이를 하자는 것도, “6은 이런 상징이다”라고 단정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6이라는 형식이 반복된다’는 패턴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움벨트 개념에서 중요한 건 무한이 아니라 구조다.
인간, 고양이, 곤충, 식물, 무생물(달), 그리고 관찰자.
이렇게 여섯 개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각기 다른 움벨트를 하나의 원형 구조 안에 담는다는 발상은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조형적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럼 6이냐, 100이냐. 개념적으로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이미지 안에서는 대표성 있는 소수가 가장 강하다. 개념은 열어두되, 이미지는 선별한다.
이 지점이 관건일 것이다.
추상이 아니라,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건, 추상이 아니라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 레이어드 된다는 점이다. 이건 고리들 작업의 기존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어렵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상징만 던져놓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이미지로 겹쳐진 인식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글은 고리들의 작품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건 내가 왜 이 작업을 알아보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 정리에 가깝다.
한 작가를, 그림들을 오랜 시간 바라봐온 한 사람이 팬으로서 써 내려간 사유의 기록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이 글을 쓰다 잠시 예술로 놀아봤다.
‘6개 다중 움벨트’라는 개념을
나, 빨강과 초록의 눈송이, 크리스마스 트리(식물), 루돌프(동물), 산타, 그리고 하나님(신이자 관찰자)로 설정해 크리스마스 버전의 움벨트 이미지를 만들어보는 시도였다.
아직은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히 구현하기엔 많이 서툴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즐겁다.
생각을 이미지로 옮기고, 어긋나고, 다시 조정해보는 이 반복이야말로 ‘예술로 놀기’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