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단순했다.
저 두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그림 속 인물이라면 무엇을 보고 싶을까.
지인 초대로 다녀온 특강이었다. 재학생도 아니었고, 이론 수업을 듣고 나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짧은 실습 시간이 주어졌다. 명화 한 점을 보고 질문 하나, 그리고 종이 한 장과 색연필. 미소 짓는 소녀는 무언가에 공감하고 있는 듯했고, 입을 가린 어른은 조금 부끄러운 표정 같았다.
저런 표정을 짓게 되는 장면은 과연 어떤 장면일지 떠올려봤다. 처음엔 내 앞에 놓인 백지장처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 속 두 인물은 나이도 생각도 다를 것이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일 수도 있고, 평범하지 않은 일상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어른이 놀랄 만한 일도, 아이들에게는 놀이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런데 막상 그리려니, 내 손으로는 그 장면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서툰 그림 실력으로 무엇을 그릴 수 있을지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이론 수업에서 예시로 나왔던 키스 해링의 캐릭터를 떠올렸다. 단순해 보였지만, 비율에 맞게 그리려니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금 더 단순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노란색 색연필을 집었다. 예전에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릴 때 늘 노랑을 썼던 기억이 났다. 희망의 색이라는 의미도 함께 떠올랐다. 예쁜 꽃이 달린 치마를 입은 소녀가 물구나무를 서서 걷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리다 보니 사람을 너무 크게 그려서 다리가 잘렸다. 종이를 뒤집어 놓고 다시 보았을 때, 장면이 바뀌어 있었다. 이 소녀는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림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새롭게 상상해 보았다. 명화 속 두 사람이 기대고 있던 곳은 더 이상 평범한 건물이 아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이어야 했다.
그래야 내 그림 속 소녀를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이 맞을 것 같았다. 아래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고, 위에서는 열기구 같은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상태. 조금 낯설고 두렵지만, 그 순간만큼은 꿈결 같은 장면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그림은 끝내지 못했다. 바탕에 하늘색, 보라, 분홍을 아주 흐리게 얹고 그대로 멈췄다.
완성하지 않기로 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발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 흐릿했고,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저 그림이 궁금하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림을 설명했다기보다, 그 그림을 그리며 따라온 생각의 흐름을 조심스럽게 말로 옮겼을 뿐이었다.
특강은 그렇게 끝났다. 같이 간 분은 내가 학생 같다고 했고, 다른 분은 조용한데 눈에 띄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집에 와서 다시 사진을 보니 그림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날의 질문만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무엇을 보고 싶을까.
각자의 그림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흐릿한 상태로, 한동안 떠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