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인문학 30 : 조건이 있는 감정 02

허용 가능한 선

by 수안

같은 책이었다. 같은 활동지였고, 같은 준비를 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내 감정은 같지 않았다. 어떤 반에서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렸고, 어떤 반에서는 설명을 하면서도 어딘가 미세한 긴장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늘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수업이 내가 예상한 흐름 안에서 움직일 때 나는 안도했다. 손이 고르게 올라오고, 질문이 이어지고, 활동이 준비한 순서대로 흘러갈 때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씩 내려갔다. 반대로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질 때는 웃고 있으면서도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지금은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멈출 것인가. 흐름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 빠르게 가늠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 감정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는 걸. 나는 참여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예측 가능한 참여를 더 편안해했다. 나는 자유를 존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자유를 더 선호하고 있었다. 편안함은 무조건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잘 굴러간다’는 전제가 충족될 때 비로소 찾아오는 상태였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 전의 한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누군가의 수업을 듣던 자리에서 괜히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졌던 순간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자세를 고치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조금 더 나은 답을 찾고 싶어 졌던 마음.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향해 있었던 것 같지만, 어쩌면 내 가능성을 향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 마음에도 조건이 있었다.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를 자극하는 분위기 속에 있을 때, 나는 조금 더 성장하고 싶어졌다. 그 감정은 타인을 향한 동경이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기대였다.
지금 나는 아이들 앞에 서 있다. 누군가가 더 집중해보고 싶고, 조금 더 시도해보고 싶어질 수 있는 자리에 함께 서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이 약간 설레듯 두근거리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수업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나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같은 장면 안에서 다시 확인한다.


교실로 들어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이 충족되어야 편안해지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 조건은 조금씩 넓어질 수 있는가. 완벽한 흐름이 아니어도, 예측 가능한 참여가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매 순간의 변화에 올라탄 채, 기꺼이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선다. 조건을 탓하기보다, 내 허용 가능한 선을 조금씩 넓혀보며.








작가의 이전글감정 인문학 12.6 : 의식의 빈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