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35 : 망설임의 이유

by 수안

어떤 선택들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제처럼 보였던 것들도, 생각을 조금 더 이어가다 보면 예상보다 오래 붙잡게 된다. 결정을 미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망설인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라기보다, 여러 방향을 동시에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두고 경우의 수에 대한 생각들을 짚어본다. 하나만 보일 때는 오히려 선택이 빠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선택하지 않은 쪽의 가능성, 그 이후의 흐름, 감당해야 할 것들까지 같이 떠오른다. 그때부터는 결정이 가벼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그 사이에 머문다. 확신과 불안이 함께 있는 자리, 기대와 피로가 겹쳐 있는 상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마음들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음이 흔들린다기보다,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열려 있는 상태에 가깝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금방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기도 한다. 이미 충분히 생각했다고 느끼면서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답답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왜 이렇게까지 오래 고민해야 하는지, 그냥 정해버리면 되는 일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안에서는 조금씩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상태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지, 무엇은 놓아도 되는지. 빠르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고 있는 흐름이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으면서도, 예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는 이전과 완전히 같은 자리는 아니다.

한 바퀴 돌아 제자리인 것 같지만, 보이지 않게 조금은 달라져 있다.

그 변화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할 때도 있다. 그런데 스스로는 알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쉽게 혼란스럽게 여겨졌을 지점에서 조금 더 빠르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고, 무조건 붙잡고 있었을 것들을, 이제는 한 번쯤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선택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향을 정하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임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어떤 선택을 견딜 수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보다, 무엇이 나에게 남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 기준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망설이면서도, 예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사이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태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이 정도의 속도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망설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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