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38 : 익숙함의 착각 02

이름이 만들어내는 착각

by 수안

우리는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이해했다고 느낀다. 낯설던 대상이 하나의 단어로 정리되면, 더 이상 헤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태는 이해라기보다, 궁금증이 일부 해소된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완전히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멈춘다.


아들을 군부대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옆에 있는 수목원에 잠시 들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잠깐 바람이나 쐬고 가려던 길이었다.


수목원 안은 조용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발걸음이 흙을 밟는 소리가 작게 겹쳤다.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길을 붙잡은 건 작은 보라색 꽃 하나였다.


눈에 확 들어오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얼마 전 헤어숍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이름을 알지 못했던 그 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렇게 눈길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습을 조금 더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꽃잎의 색과 모양, 개수까지, 이전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 알아보니 귀에 익숙한 제비꽃이었다. 철새인 제비가 돌아오는 초봄에 피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 하나에도 누군가의 오랜 시선과 시간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꽃 앞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이름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생각을 정리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 지긋이 바라보는 상태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름은 대상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 자리에서 시선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믿고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수목원을 나오는 길, 입구 틈 사이에 민들레 하나가 피어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쉽게 지나치는 자리였지만, 그 꽃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조금 전까지는 보려고 애쓰던 꽃 앞에 서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려던 꽃 앞에서 발걸음이 늦춰졌다. 익숙한 꽃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것의 본질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단어로 그것을 정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일부만 붙잡고 있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눈으로 보고, 오래 머물며, 반응을 살피고, 시간을 지나며 변화해 가는 모습까지 지켜보아야 비로소 조금은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은 시작일 뿐이다. 이해는 그 이후, 우리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에 따라 조금씩 더해지며 그 시간 위에서 만들어진다.


눈에 크게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계절을 바꾸는 신호였던 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느새 내 안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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