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38 : 익숙함의 착각 04

습관적 무심함

by 수안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지나친다.

나는 가끔 걸음을 늦추거나, 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잠시 머무를 때가 있다. 문득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치던 것들 앞에서 잠깐 멈춰 서 보고, 이름을 붙이기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려고 한다.

그렇게 멈춰 선 순간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작은 꽃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눈에 잘 띄지 않던 것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가끔은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 한편이 조급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음 일정이 떠오른다. 시간을 확인하고,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결국 발걸음을 옮긴다. 실제로 몇 번은 그렇게 허둥지둥 자리를 옮긴 적도 있었다.

보고 싶었던 마음과, 놓치지 않아야 할 시간 사이에서 잠시 흔들린다. 그 짧은 순간의 선택 끝에, 나는 다시 익숙한 속도로 돌아간다. 그 선택은 아주 짧았지만, 반복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눈은 다른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길가에 새로 붙은 현수막이나, 평소에는 보지 않던 안내문 같은 것들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정작 보려고 멈췄던 것들은 놓치면서, 그런 것들만 또렷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때는 방금 전까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눈앞에 있었던 풍경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보고 있다는 감각은 남아 있지만,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지는 희미해진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보려고 하다가도, 결국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익숙함은 나를 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심하게 만든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고,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 사이에서 많은 것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나는 아직도 잘 보지 못한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다시 걸음을 늦춘다.
이번에는, 조금 덜 놓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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