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38 : 익숙함의 착각 05

나는 당신을 보고 있었을까

by 수안

사람은 꽃보다 더 쉽게 익숙해진다. 자주 보고, 오래 함께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굳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끝까지 듣지 않는다. 말이 이어지는 도중에 이미 결론을 짐작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리 그려버린다. 그리고 그 예상 안에서 상대를 이해했다고 여긴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다. 익숙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사실은 절반쯤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장면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 사람은 늘 그런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그렇게 여기는 사이에, 나는 점점 그 사람을 덜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상대가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 예전에 쌓아둔 인상으로 지금을 덮어버린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편안함일 수 있지만, 존재감이 줄어드는 순간이라면 쓸쓸함이 밀려올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어긋남이 생긴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겼는데, 상대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름을 아는 뒤로 더 이상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도 익숙해지는 뒤로는 천천히 바라보지 않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가끔이라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 한다. 이미 알 것 같다고 느껴질수록,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귀 기울여 보려고 한다.


익숙함은 여전히 편안하지만, 그 안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정말 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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