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38 : 익숙함의 착각 06

의미가 붙는 순간

by 수안

우리는 어떤 때를 특별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이 특별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간 하루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때는 아무 의미도 없었고, 특별할 이유도 없었다. 일상 속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시간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말이나 표정 하나가 뒤늦게 마음에 남는다.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안에 담겨 있던 감정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제야 우리는 말한다. 그때가 중요했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변한 것은 그때가 아니라 나의 상태다. 그저 흘려보냈던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닿으면서 비로소 다른 결로 다가온다. 지금의 내가 달라지면서, 그때를 바라보는 방식도 함께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만남이나 관계는 처음부터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워버리고 싶거나,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스쳐 지나간 일처럼 남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 기억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그 위에 의미를 덧붙이며, 그때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고, 그냥 흘려보내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미는 그 자리에서 생겨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 그 감정이 저절로 떠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나이가 되고, 비슷한 상황이나 공간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뒤늦게 겹쳐지면서, 그 기억은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자리 잡는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일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때 누군가가 내게 건넸던 감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제야 비로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 속에, 나중에야 알게 될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들 중에 어떤 것들이, 훗날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게 될까. 아니면 언젠가 다시 떠올리게 될 기억으로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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