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난다는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2022년 1월 7일 처음 시작한 항암 약물치료.
2022년 7월 4일 약물 항암치료를 12차까지 진행했다.
2주에 한번 약물 항암치료를 하며 백혈구 수치나 호중구 수치가 돌아오지 않은 주에는 어쩔 수 없이 그 다음주로 항암치료를 미루는 주도 2번 정도 있었다.
그 때 알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정을 아무리 항암 치료 하는 날을 예측해서 피해 잡아도 또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항암 약물치료를 진행하면서 약물을 맞는 주에는 최대한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잠이 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잠을 자며 몸이 가라앉으면 가라앉는대로, 식욕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지냈다.
약물을 맞지 않는 주에는 대부분 '그래서 이제 나 뭐해먹고살지?', '지금 뭐해야 되지?'라는 질문들로 나만의 답을 찾아가려 한 시간들이었다.
항암 약물이 독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약물이 몸에 들어와 아픈 것보단, 변비 증상이 더 아팠다. 그 좋아하던 오프라이스 얇은피 김치만두도, 로데오거리 매콤한 길거리 포장마차 떡볶이도, 가끔 먹으면 더 맛있는 육개장 컵라면도, 매콤하게 목을 적셔주는 얼큰 해물 순두부도... 변비 증상이 심해지면서 끊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매콤하고 자극적인 음식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을 끊은 건 아니었는데, 하루에 밀가루 + 매콤함의 콤비라 할 수 있는 피가 두꺼운 김치찐빵만두를 먹고 거의 2주간 혈변+항문주변 헐기+변이 안나옴+나올땐 아픔+치질증상 까지 겪게 되면서 몸이 아프게 되는 음식들을 나 스스로 끊게 되는 시간이 있었다.
덕분에 요즘은 밖에 나가면 잘 사먹는 음식이 무제한으로 야채를 담아서 푹 익혀먹을 수 있는 '샤브샤브'다.
건강한 음식들을 먹어야 몸에 좋다는 소리게 이렇게 증명되다니... 역시 사람은 아파봐야 뭐가 내 몸에 좋은지를 아는 것 같다.
암튼!
22년 7월 12-13일에 CT, MRI, 대장내시경을 진행하고 항암제 처방을 해주시던 선생님께 진료를 받은 날이었다.
처음 21년 12월 말에 급히 입원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진행했을 때에는 암이 간에 전이가 많이 되어서 수술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암 크기와 수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CT, MRI, 대장내시경 결과가 나오는 약 일주일의 시간동안 더 기도를 하셨는데, 나는 그 기간동안에도 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생긴대로 나오겠지 뭐."
그리고 엄마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료실을 나와서 우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항암 수치가 내려간 것이 10명중의 1명 꼴로 나오는 아주 좋은 결과라고 하셨다.
2021년 12월 120.5에서 시작했던 암 수치는, 22년 7월 1.7이라는 숫자로 급격히 떨어졌다.
숫자로 환산하면 70배나 감소한 것이다.
그동안 음식을 가려먹고,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고싶은 일들만 골라서 하려고 한게 효과가 있던 걸까.
지금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너가 긍정적인게 가장 큰거야'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 난 긍정적이고 싶어 긍정적이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포기하는 선택지', '축 쳐져서 아무것도 안하는 선택지'가 나에게 생각나지도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다. 단지 나는 암을 내가 잠시 쉬어가는 수단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급하게 열심히 살려고 해서. 조금만 쉬면서 가도 좋다는 뜻으로 암을 삶에 들여왔다.
의사 선생님께선 이제 항암제로 줄일 수 있는 수치까지는 다 줄였고, 환자의 의사에 따라 수술을 하지 않고 계속 항암제로 치료를 지속할 수도 있지만 이미 내가 쓰고 있던 항암제 중 '손끝 저릿함' 부작용이 오는 약은 부작용 증상 때문에 더이상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수술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감정은 '그런가보다. 다행이다' 였다. 너무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진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나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구나'정도의 느낌이랄까.
간의 40-50%를 절제해야 하고, 대장도 일부 잘라내야 하고, 림프절도 봐야하고, 난소를 적어도 하나는 떼어내야 하는 큰 수술이지만, 아마도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회에 걸쳐 해야할 수술이겠지만, 나는 아직 이 수술이 아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너무 겁먹을까봐 '내가 잠자고 일어나면 다 끝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안일하게 끊임없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다시 건강해진다면.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중단해도 된다면.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더 나누면서 살고싶다.
지난 6개월동안 수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을 너무 잘 안다.
내가 얼굴을 아는 분도 계시고, 내가 모르는 분들도 부모님을 통해 내 상황을 아시고 계속 성당에 가서, 또는 기도할 때마다 나에 대한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는,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꼭 건강해져서,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꼭 건강해져야 한다.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P.S
사실.. 아주 조금 겁이 나기는 한다. 정말 아주 조금. 아마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아.. 아마도 병원 침대에 눕혀져서 수술실로 향하는 그 순간부터 겁이 날 것 같다.
그 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민정아, 괜찮아.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우리 조금 이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