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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암환자 Apr 30. 2022

오늘 회사 때려치면 민폐일까?

그치만 난 쉬고싶은걸.



"미움받지 않고 쉬고싶어."



2021년에는 유난히 쉬고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나에게는 쉴 수 있는 옵션이 없었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 그럴 옵션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멈추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일들, 나의 일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받는 미움을 참 극도로 싫어했구나 싶기도 하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목표로 한 회사 매출이 나오지 않았으니 못 쉬어.'라는 생각을 했고, 그 말을 회사 안에서 임원진끼리 했고, 스스로도 그 말을 팀원들에게 참 많이 했던 시기가 있었다. 매출을 내지 못해서 쉬지 못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했던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누구보다 쉼과 여유가 필요했던 시기였나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일'만을 생각했고, '성공'을 생각했고, '내가 미래에 벌 돈'을 생각했다. 밥을 먹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 누군가를 만나서 재잘거리는 시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일을 하지 않아서' 아까웠다.


사실은 밥을 제 때 삼시세끼 먹었어야 했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어야 했고, 산책을 하며 머리와 마음을 정화시켰어야 했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을 삶에 포함시켰어야 했는데.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내가 가진 한계점을 계속 깨뜨리겠다는 생각 하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겠다고 제안되는 모든 일에 "YES"를 외치던 나는 결국 몸이 견디지 못했나보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나 보다.


나는 그렇게 2021년 12월 23일에 암 진단을 받았다.

대장암 4기.






'매출이 안나서 지금은 쉴 타이밍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쉬는 타이밍은 너가 결정하는 거야. 쉼을 선택해서 잃는것도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걸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잃는 만큼 얻는 것이 있을테니."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일들을 해내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너무 큰 오점을 남기는 거라 스스로 참 많이 생각했던 시기라, 쉬라는 이야기가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 다시 돌아가도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쉼과 여유로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상태로 돌아간다면, 아마 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1년에 내 주변에서 나를 내 옆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이 봤던 사람들은 '너 쉼이 필요해 보여' 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그냥 잔소리쯤으로 치부했었던것 같다. 나는 더 달릴 수 있는데 왜 자꾸 나에게 쉬라고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침 저녁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으면 그건 이유가 있었을 텐데. 아마 그만큼 나는 삶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암은 나에게 미움받지 않고 쉴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참 너무 좋았다.

드디어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쉴 수 있는 꺼리가 생겨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모두 중단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꺼리가 생겨서. 나를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겨서.


그래서 나는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행했던 협업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몸바쳤던 회사에서 빠지게 되었는데도 나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받을 거라 생각했던 눈총도, 미움의 시선도, 원망섞인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워커홀릭에서 워커가 빠졌는데도 괜찮았다. 오히려 내 삶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물론 암에 걸린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하게는 그 정도가 아니면 나는 이렇게 온전히 쉼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늘 말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원래 원했던 전치 4주 정도의 사고가 났었다면 2주 회복기를 가지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을꺼라 말을 하니까.


쉬어서 행복하다.

쉬어도 괜찮다.

쉼은 중요하다.


나의 쉼은 중요하다.

쉼이 없으면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여유가 없어지면 마음이 병든다.

마음이 병들면 몸에 나타난다.

몸이 아프면 쉼의 중요성을 알게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바쁘고 지치는 삶에서 쉬는 순간, 삶의 여유를 만들어서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꼭.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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