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을 때까지 숟가락으로 때리는' 숟가락 귀신 같았다구요..
혹시 '숟가락 귀신' 아시나요?
어렸을 때 봤던 공포영화 중 숟가락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어요. 다른 공포나 액션 영화처럼 칼이나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 하나만 가지고 그 숟가락으로 사람의 머리를 때리면서 그 사람이 숟가락으로 죽을 때까지 때리는 귀시인....
저는 지금도 공포영화를 잘 못보는 사람인데, 숟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저렇게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근데... 숟가락 귀신이 엄마랑 무슨 상관 이에요?"
하하..!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저도 엄마에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으니까요.
그럼 제 소개를 잠깐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9살의 크리스마스 전날
암 확정 진단을 받은
대장암 4기 환자입니다.
암 확정 진단을 받자마자 제 생활의 모든 것이 갑자기 급변하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감자튀김도, 초콜릿도, 케이크도, 과자들도 갑자기 못 먹게 되고 정말 산골짜기에서 자연식을 드시는 분들의 음식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은 체력이 중요할 때라 술 빼고 다 드세요" 라는 말에도 어머니께서는 단호하게 지금부터 식단조절을 하도록 하셨어요.
달달한 연근조림이 아니라 생 연근을 삶기만한 것을 먹고, 일반 물김치가 아니라 황태머리와 온갖 약재로 쓰이는 재료들이 들어가 발효가 된 물김치를 먹고... 원래 자극적인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고기를 막 찾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물이나 삼삼한 음식들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바뀐 식단은 정말 저를 미치게 했어요. 갑자기 먹는 '간을 아예 하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만 느껴지거나' '생전 처음 맛보는 재료들로 조합된 음식'들은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먹으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항암 약물치료를 받으면 구역질이나 구토증상, 식욕부진이 같이 동반되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암 확정 진단 후 '대장암 환자가 먹으면 좋을 음식들'을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많이 검색을 하신 후, 갑자기 먹을 음식들을 너무 많이 제한하고 제가 뭘 먹는지 하루 삼시세끼를 관리감독 하시는 어머니가 저를 미치게 했습니다.
물론 암환자로써 식단을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요. 음식을 혼자 하려면 귀찮을 때도 있는데 그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항상 이런 말을 같이 합니다.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 이런 말을 하는거야. 감사할줄 알아야 하는게 진짜 맞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래 ㅠㅠ"
어쨌든 그렇게 서른 살, 21년간 없었던 엄마의 간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떤 일을 하던 너가 책임을 지면 된다'고 하셨고,
중학교 때 미국 교환학생으로 가서 부모님 없이 1년,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3년 생활,
'교육비에만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신다'는 부모님의 철학 아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대학교는 영국으로 가서 학자금 외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를 6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관리하고 생활했는데...
그렇게 '모녀 사이에도 필요한' 조금의 안전한 사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왔던 저의 시간, 저의 공간에 어머니가 예고없이 들어오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 항암 약물치료를 받는 1차, 2차 때에는 그렇게 식단을 관리해주는 어머니가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해주시는 음식들을 감사하게 먹기도 하고, 일부러 먹으려는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항암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구토증상, 미식거림, 식욕부진이 함께 동반되다 보니 제가 아무리 먹으려 해도 토가 올라올 때도 있고, 토를 참을 겨를도 없이 구토하게 되는 증상, 하루에 3시간만 깨어있고 나머지 21시간은 잠을 자고 싶은 증상들이 자꾸 생겨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엄마, 아빠를 만나면 늘 듣는 말은...
먹어. 무조건 먹어. 구역질이 나도 먹고, 토하더라도 다시 먹어.
였습니다.
나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먹으려고, 나도 살려는 의지를 보이려고 이렇게 챙겨주신 음식을 먹고 있는데. 생전 처음 느끼는 자연주의 환자 식단을 먹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토가 올라오는 와중에도 먹고 있는데...
그런데 이런 나보고 토하더라도 다시 먹으라고...?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좋은 마음으로 '날 챙겨주려 하시는 거야' 생각하다가도 정말 먹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지경이 되니 엄마, 아빠 얼굴을 보는 것 조차 꺼려졌습니다.
암 환자라고 첫 진단을 받은 후 한달 반동안은
- 매일 아침 엄마가 제 자취하는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아침마다 음식을 주셨고
- 매일 삼시세끼 어떤 음식을 먹는지 사진으로 찍어 보내야 했고
- 5가지 야채를 우린 야채수를 하루에 2L씩 마셔야 했고
- 대장암 환자에게 좋다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청국장 가루와 들기름을 매일 먹는지 확인받아야 했거든요.
마치 엄마가 숟가락 살인마가 된 듯 '먹을 때까지' 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니는 사람같이 느껴졌어요.
그러다 엄마의 얼굴만 보면 토가 나올 지경까지 갔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 토가 나온다기보다는 ,
- 엄마는 저만 보면 '먹어. 먹었니?' 라는 말을 하는데
- 이 소리만 들으면 음식이 땡기지 않고 오히려 구토증상이 생기고
- 그러다보니 엄마의 얼굴만 보면 토가 나오는 증상이 생기는 거였죠.
결국 항암 약물치료 4차를 한 후 어머니께 이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를 보면 이제 토할 것 같아.
이렇게만 말하면 오해하실 것 같아 위에 말한 내용을 구구절절 다 설명을 했어요. 그리고 '내 음식은 내가 챙겨먹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더이상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 맛의 음식을 먹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요리를 해서 음식을 챙겨먹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공부도 누가 시켜서 할 때는 정말 싫은데 나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을 때 더 파고들며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스스로 식단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면서 밀가루를 피하고, 단 것을 많이 먹는 것을 피하고, 일부러 더 삼삼하게 간을 맞추어 먹고, 산책도 더 자주 나가려 하고 있어요.
'자유 의지'가 중요하고 스스로 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에게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 정말 기분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닫고 있거든요.
물론 이제는 엄마가 해줬던 식단도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암환자가 되어도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싶다는 의지는 어디 안가나 봅니다.
그래서 역시,
저는 제 삶을 제 맘대로,
제 멋대로 살고싶어지네요!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