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만 못하는 줄 알았더니 살아있는 것도 안되는 거였어..?
"조직검사결과... 암이네요..
그런데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암이 다른데서 난소로 전이된 것처럼 보입니다."
2021년 12월 23일.
내 20대의 마지막, 29살의 크리스마스에 나는 쉼을 선물받았다.
2021년 크리스마스에는 딱 한가지 소원밖에 바라지 않았는데.
"웃고싶다." 라는 소원.
2017년 크리스마스에는 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들과 애정어린 문자를 주고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2018년 크리스마스에는 그 남자친구과 너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그 사람은 그 때 양다리도 아닌 삼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것을 2개월 후에 알았고.
2019년 크리스마스, 2020년 크리스마스는 전 남자친구와의 5년간의 연애에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한 후 약 9년만에 맞는 싱글 워커홀릭으로써의 날로 크리스마스같지 않은 또 하나의 하루를 흘려보냈다.
2021년 8월,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2년만에 시작한 연애 덕분에 2021년의 크리스마스는 왠지 오랜만에 웃으며 보낼 수 있는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암 진단을 받았다.
"아니, 전화하기가 왜이리 힘들어요?! 얼른 오셔서 CT결과 가지고 가까운 산부인과로 가세요!"
2021년 12월 16일.
어김없이 눈 뜨자마자 아침식사를 챙기기보다는 전날 끝내지 못했던 업무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11월부터 계속 장염증상으로 내원했던 내과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몇일 전 정말 죽을 듯이 밤에 배가 아파 응급실이라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결국 그 날은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 참았던 적이 있어 다음날 내과에 가서 CT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방문했었는데, 그 결과가 나온 거였다. 그 때만 해도 '어떻게 이렇게 죽을 듯이 아팠다가 괜찮아지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몸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한 의사 선생님은 2일 전 찍은 CT결과를 보고 전화하는데 지금 당장 산부인과에 가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을 하라고 했다.
급히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으니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심각해보였다. 몸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는데 왜 그렇게 CT결과를 보고 심각한 표정인지 그 때만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소염전 (난소가 꼬임증상) 진단을 받아 급히 당일 응급수술 후 회복기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추후 수술중에 난소가 꼬인 것이 아니라 혹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혹의 상태가 이상해보여 조직검사를 의뢰했다고.
그리고 나는 2021년 12월 23일에 그 혹이 암덩어리라는 진단을 받았다.
산부인과에서 난소에 암이 있다는 진단을 들어서 그 때까지만 해도 난소암인 줄 알았는데...
의사선생님은 "난소암일수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전이된 것으로 보여 큰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셔야한다."고 했다. 다른데서 전이된 것이라면 이미 암의 진행속도가 많이 된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난소에 암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을 땐 자궁적출까지 말씀을 하시길래 기껏해야 '이제 임신은 물건너갔구나.. 지금 남자친구는 가정을 꾸리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어했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다였다.
임신을 하기 싫다. 아이는 지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도 내가 '선택적'으로 임신을 하지 않길 원하는 것과 선택지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에 그냥 조금 슬퍼졌다가도 '뭐, 어쩔 수 없지. 자궁만 적출하면 다른 데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안쓰러워졌다.
막상 다른 곳에서 암이 전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하니 이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갑자기 내 삶, 내 생명이 걸린 일이 되버린 것 같았다.
난소에만 암이 있었다고 하면 나름 씩씩하게 진료실을 나올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그랬는데...
결국 나는 산부인과에서 암 진단을 받고 진료실 안에서 정말 크게 울어버렸다.
'왜 하필 나일까...? 왜 하필 지금일까...? 왜..?'
진료실 안에 같이 계셨던 간호사 선생님이 같이 우실 정도면 내가 정말 서럽게 울었나 보다.
서럽게 울고 난 이후에는 16년지기 친구와 회사 대표님께 나 오늘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며 전화를 하고 배가고파 밥을 먹으러 갔다. 울고나니 어쩜 그렇게 배가 고파오던지. 큰 대학병원은 지금 찾으나 내일 찾으나 똑같을거라는 생각에 일단 배부터 채우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022년 1월 7일.
국립압센터에서 나는 대장암 (결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살아있다.
사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시한부 선고라도 받을 줄 알았다.
"3개월 남았습니다."
이런거 말이다.
빠른 검사를 위해 국립암센터에 입원했을 당시 의사선생님께서 하도 암 세포가 여기저기 많이 전이되어 안좋은 상황이라 겁을 주시는 바람에 나는 내가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런데 내 삶은 다행히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나보다.
지금 당장 수술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치료'를 먼저 말씀하셨으니까.
어쨌든 뭐,
나는 지금 살아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이, 지금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이순간 당신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나도 가끔 겁이 난다.
의사선생님이 완치목적의 치료보다 생존목적의 치료라고 하셔서.
그래도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쓰고 싶다.
내 멋대로,
내가 하고싶은 대로!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