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말고 하나 남은 난소를 가져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암 4기 수술 후 처음 의사 선생님들을 뵈는 날이었다.
2차례 연속으로 진행한 수술 후 암이 몸에 남아 있는지, 남아있다면 향후 어떻게 치료를 해야하는지 이야기를 듣는 날.
같이 사는 친구가 아침일찍 집을 나서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잘 하고 와! 좋은 얘기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생긴대로 나오겠지 뭐. 다녀올게!"
이렇게 말하는건 그냥 아주 큰 기대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기대가 크면 또 그만큼 많이 무너지니까 덜 무너지고 덜 아파하기 위한 나만의 장치.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또 살아가리라 하는 나만의 생각이 담긴 말.
오늘은 병원에 가면 어떤 말을 들을까.
하는 생각으로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내가 좋아하는 화사한 색의 옷을 입을까?' 금색 치마에 블랙 니트를 입을까 싶다가 내 기준에 무난한 초록색 목폴라 티에 회색 츄리닝 바지를 걸쳐입었다.
2021년 12월 23일에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핫핑크색 코트를 입고 병원에 조직검사결과를 들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난소에 있는 혹을 제거하고 조직검사결과를 들으러 갔던 터라 대기실 의자들에 산모분들이 많이 계셨던 병원이었다.
보온을 중요시하느라 대부분 롱패딩을 입으신 산모분들 사이에 누가봐도 화려한 핑크색 코트를 입고갔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색을 걸치고 조직검사결과가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난한 색의 옷을 걸치고 싶었다.
어떤 말을 선생님의 입에서 듣던,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국립암센터에 갈 때는 늘 엄마와 함께간다. 이렇게 다닌지도 벌써 1년이다.
오늘은 아침 7시부터 엄마가 나와서 같이 운전을 해 주시며 같이 암센터에 간다. 운전석에 앉으면 왠지 그냥 자는 것은 죄책감이 들어서 어떻게든 깨어서 엄마와 말을 하려 하다가 늘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잠에 잠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진료 2시간 전 8시.
이 때 도착해서 채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엄마와 함께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
정기적인 채혈을 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채혈할 때 바늘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대신 채혈해주시는 선생님께 "오늘은 몇 통 뽑아요?" 라는 질문을 한다. 어떤 때는 3통, 어떤 때는 5통까지 뽑는 피를 기다리며 바늘이 내 몸을 떠날 때까지 나는 채혈하는 선생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채혈이 끝나고 늘 병원에서 앉을 자리를 먼저 찾는다. 진료시간까지 꽤 시간이 남기 때문이다. 이 시간동안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책을 읽다보니 책상과 의자가 편한 곳을 찾아야 한다.
노트북 너머로 엄마를 보면 왠지모르게 긴장한 듯한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을 한다.
눈을 감고 묵주를 꺼내 묵주기도를 하는 엄마를 보면서 괜히 나도 기도를 해보기도 한다.
"하느님, 엄마가 울지 않게 해 주세요."
대장 혈액 종양 외과 선생님을 먼저 만났다. 선생님은 "좋아보이네요"라는 말을 했지만 눈이 벌써 슬퍼 보였다. 그리고 항암수치 그래프를 보여주셨다.
2021년 12월 120에서 시작해 6개월동안 약물 항암 치료를 하고 급격히 0에 가깝게 떨어진 수치는 수술 후 치료를 받지 않는 동안 16으로 올랐다.
수술을 하고 나서 이제 대장에는 암이 보이지 않지만 간에 암이 5개정도 새로 보인다고 한다.
큰건 1.8cm, 작은 것은 5-6mm.
약물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을 건네는 외과 선생님의 표정이 나보다 슬퍼보였다.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전에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다시 암이 보이는 건데
이것도 재발이라고 하나요?"
선생님은 그렇다고 했다.
수술을 하기 전부터 수술로 암이 100% 제거가 안될수도 있다, 너무 작아서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암이 있을 수 있다 라고 이야기를 듣고 한 수술이니까,
그리고 40일동안의 병원 입원기간에도 약물 항암치료를 아마 다시 해야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또 안일하게 '약물항암치료를 더 하면 되나보다'라고만 생각했다.
1시간 후 항암치료를 더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내과 선생님을 만났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약물이 바뀐다고 했다.
이전에 쓰던 약이 손저림 증상이 심해져서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한다고. 이것도 이미 수술 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나는 결국 울어버렸다.
다시 약물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바꾸게 되는 약물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해서.
늘 병원에서는 내가 아니라 엄마가 울었는데. 내가 먼저 운 까닭일까, 엄마는 그날 울지 않았다.
바뀐 처방전에 싸인을 해야 하는데 손이 너무 떨렸다.
그 싸인이 너무 하기 싫어서.
탈모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작용이었는데.
작년에 항암 중에도 꼿꼿히 버텨주는 머리카락이 참 자랑스러웠는데. 올해는 이렇게 시작부터 또 내려놓음을 배운다.
차라리 머리카락보다 하나 남은 난소를 가져가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술을 하며 이전에 암이 붙어있던 오른쪽 난소를 제거했는데, 선생님들은 어떻게서든 내 난소를 살리고 싶어했다.
나는 아직도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걸까.
호르몬에 더 중요한 난소보다 머리카락을 살리고 싶어하다니.
펑펑 소리치며 우는 기간이 길줄 알았는데 수술로 반절이 없어졌던 내 간덩이가 내 생각보다 크다.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약물 항암 13차를 시작했고, 가발을 찾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이 와중에도 예쁘고 싶은 마음 충족하는 가발을 사봐야지!
나는 늘 그랬어.
큰 일이 닥치면 당황도 하고 울음도 나지만
결국 어떤 방법으로던, 어떤 방향으로던 나아갔으니까.
나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꺼야.
친구가 글을 썼다.
나는 꼭 너의 펑펑 우는 모습을 볼꺼야.
그날 우리 같이 펑펑 울자.
그 때도 내 옆에서 있어줘서 미리 고마워.
그리고 저는 이렇게 무탈하게 지내요.
요즘 무탈하다는 이 말이 참 평안하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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