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보고 희망을 읽다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희생과 희망은 왠지 끈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앞글자 '희'때문일까?한문의 '희'는 전혀 다르다.


영화의 한 장면이 사진처럼 오랫동안에 머리속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영화의 장면이 있다.영화 '희망'의 거위떼와 함께 뛰어가는 여자 누드의 뒷모습이다.


그 장면은 그 영화의 백미인데 땡볕 가을 추수 때 얼음냉수같이 카타르시스 같은 화한 맛을 느끼게 한다.구원을 뜻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 영화'희망'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나오질 않았다.감독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같이 봤던 친구도 오랫동안 만나질 않게 됬다.


어느 날 독서를 하다가 그영화가 안드레이 타르 코프 스키의 '희생'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게됬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걸 안 순간이다.


감독 이름도 영화 이름도 가물가물했지만 그 화한 장면의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는순간이다.


영화 제목이 '희망'이라고 머릿속에 오류로 남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 '희생' 으로 정확하게 풀리는 순간이다. 마치 퍼즐이 풀리는 순간의 느낌이 들었다.


'희생이 있어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감독도 이걸 말하고 싶었던걸 아닐까?생각해본다.

젊을 때 본 영화 지만 이해가 안 된 영화였다. 영화가 추상화 같이 많이 난해 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레오 라르도 다비치 그림이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주인공 작가인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이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죽은나무도 날마다 물을주고 정성을 다하면 꽃피울수 있다"고 실어증 걸린 어린아들에게 말한다.

우체부가 소식을 전하러 오고 작가의 생일날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모두 다 절망한다. 신을 부인하던 주인공도 신을 찾는다.


"주여 이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 하소서"


모든걸 내려놓겠습니다.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소식 전하는 우체부가 그의 하녀와 동침을 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귀띔을 해줘서 하녀를 찾아가서 구애하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하나 곧 그의 절망을 알고 동침을 한다.


이야기 전개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가 기호처럼 모호하고 상징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동침 후에 하녀가 누드로 뛰어가며 새들이 날고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작가는 신과 약속한 데로 집을 불태우고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정신병원으로 떠난다. 그의 아들은 죽은 나무에 물을 계속주고 하녀는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대강의 줄거리가 상징으로 표현되어있지만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희생이 있어야 희망이 생긴 다 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은 코로나 전쟁시대에 장사 안되어 문 닫는 영세 사업주들에게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가게 세를 깎아주는 아름다운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그런 희생이나 서로를 배려해서 주장하고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도 입 다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 든지 광장으로 나가지 않고 마스크 끼고 방역 당국에 협조하거나 수해로 고통받는 봉사자들을 돕거나 나라도 정치적으로 개혁하고 싶은 게 있어도 지금은 조금은 참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중이니까 말이다.


어려운 와중에도 모두 희생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자기 권리만 찾는다면 권리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더 상황은 악화될 것 같다.


희생이 있어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펌프물이 말라 있을 때 물을 바가지로 몇번 퍼부어야 그 힘으로 땅속 물을 계속 끌어내듯 희생의 물은 필요하다.


다들 힘든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추상화같은 죽은 나무의 가지와 마태수난곡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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