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친정 엄마가 그릇을 정리하면서 예쁜 찻잔을 주었다. 장미 문양이 있는 본 차이나 일본 제품이고 엄마 집에 가면 그릇장에 얌전히 있던 것이 이젠 내 것이 되었다.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여기에 무얼 담을까 하다가 홍차가 생각이 났다. 이참에 홍차에 대한 책도 빌려 볼까 하고 비대면 도서 빌림으로 도서관 도서를 검색해보니 예쁜 일러스트가 맘에 드는 모리 마리의 산문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있어서 빌려왔다.

빌려와서 가만히 보니 몇 달 전에 빌렸다가 읽지 않고 반납한 책을 다시 빌린 것이다.


"앗 이 책은 전에 빌린 책 아녀"나의 기억력이 의심 스런 순간이다. 책도 인연처럼 연이 있구나 생각하고 다시 찬찬히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모리 마리는 일본의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이다. 불행한 삶을 극복하는 소확행의 선구자였다.


전에 빌려서 소제목들을 대충 훑어봤을 때 지나간 철없는 양반 아가씨의 잘난 척 요리 글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빌려온 책 속에 있다가 읽지 않고 반납했었데 다시 내게 온 것이다.


모리 마리는 알고 보니 어릴 적에 아빠 사랑받으며 귀족처럼 살았을 뿐 불행한 삶을 산 정신적 귀족이었다. 두 번의 이혼도 파국으로 끝나고 자식과도 떨어져 살고 현실 감각도 없고 생활력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생활비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청소는 안 해도 요리를 좋아해서 침대에서 도마로 당근도 썰고 지저분한 방안에는 곰팡이 낀 초밥 상자가 굴러 다녔지만 공간에 촛대 하나로 유럽의 황실 기분을 냈다고도 한다. 마치 영화 '혐오 스런 미치코"가 연상이 되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괞쟎아 먹고 싶은 것은 매일 있으니까"

그녀의 모토는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아닐까 할 정도로 빠듯한 살림에도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겼고 미식가였다.


산문 글은 너무 귀엽고 솔직하여 어린아이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에 디테일도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홍차의 관한 글이 재미있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가장 좋아서 매일 아침 무당연유를 마신다. 덕분에 나는 프린세스의 아침을 맞는다". 사노 요코는 그녀를 평하길 "행복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멋대로 만들어 내는 그런 영혼이야말로 이 힘든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이라 극찬했다.

이성적인 사람들이 보면 대책 없는 사람 이야기 같기도 할 테지만 힘들 때는 꿈꾸며 맛있는 차와 케이크를 먹는 것도 힘이 된다는 걸

말하기 위해 다시 이 책이 내게 온 것 같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티백 홍차물을 끓여 물을3분만 우려야 하는데 이런 딴걸 하느라 3분이 지나버렸다.그러면 어떠하리 약간 떫을 뿐이지


그 홍차를 마시며 모리 마리의 소확행을 만들어간 나날을 상상하며 행복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사 생각하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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