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과 구정 사이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연극 무대 뒤 같은 썰렁한 1월이다.


무대 앞은 화려하지만 무대 뒤는 긴장감과 꾸밈이 없는 못이 튀어나온 서걱거리는 판자로 가려져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해가 바뀐 실감이 퍼뜩 나질 않는다. 하긴 기상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했다. 그건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냥 겨울이라고 추워서 조금 늦게일어 날 뿐일 게다.


1월은 화려한 무대인 봄으로 가는 유예기간과도 닮은 생각도 든다.


한 살이라도 덜 먹으려고 새해에는 떡국도 안 먹었지만 구정이 되면 식구들과 맛있는 흰떡국을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정과 구정 사이의 소한과 대한 추위를 품은 날들은 일 년을 잘 계획해야 할 것이다.


옷 입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면 풀었다가가 다시 채우느라 시간 낭비하거나 우습게 일 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조급증 때문에 잘못된 일들이 생각이 난다.


작년에 못 버린 걸 추려놓는다거나 안 보이는 구석을 좀 더 세심하게 청소하고 눈이라도 오면 눈만 바라보며 명상하고 싶은데 의욕이 앞서 자꾸 뭔가를 하려 든다.


정초에 일을 그릇 치면 한 해가 도루묵이 되므로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조급증을 버리고 준비기간처럼 벼르기만 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크로키를 처음 배울 때 강사 김종수 선생님은 일 년에 몇 번 날을 잡아 연필을 정성스럽게 여러 자루 깎아 놓고 그동안 그렸던 크로키 작품을 맘에 드는 것만 남기고 찢어버리고 정리를 하셨다.


그림도 잘 그리셨지만 준비하고 버리는 일도 예술처럼 하시는 분 같았다.


내가 볼 때는 '아까비'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 많았었지만 가차 없이 정리를 하셨다. 선생님도 같이 크로키를 하신 적이 많아서 작품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님은 작품에 몰입이 안될 때면 늘 한쪽 구석에서 눈감고 '취권'에 나오는 스승처럼 졸고 계셨었다.


어젯밤 숙취에 시달리셨는지 눈을 감고 계셨는데 주무시는 건지 생각에 잠겨있는지 알쏭달쏭했었다.


그러다가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한바탕 기지개를 켜시고 일어나 회원들의 그림을 보고 한 마디씩 하셨다.


" 손 발 머리를 크게 그리고"

"몸 전체의 균형을 생각하고"

1월에 크로키 스승님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가만히 눈감고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구정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작년에 처리 못한 것도 하고 봄에 무슨 씨 뿌릴까 생각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모든 걸 갈무리해야겠다.


올해 잘 보내기 위한 준비 운동하는 기간인 1월은 벼리는 달로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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