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냉장고 털이가 시작된다.
될 수 있으면 장을 안 보고 냉장고 속재료를 찾아서 요리를 하려고 한다.
여러 가지 재료 중 눈이 간 것은 가을에 시누이가 준도토리 묵가루를 깊숙한 냉동고에서 발견을 했다.
"이것 지인이 뒷산에서 도토리 주워다가 말려서 갈았데, 다람쥐 밥은 안 건드렸다는데 뭔 말인 줄은 모르겠네"하며 웃었었다.
묵은 처음 쑤어 보지만 시누이가 가르쳐준 데로 묵가루 1과 물 6을 섞어 푼 다음 한 방향으로 젓다가 소금 들기름을 넣으니 제법 걸쭉한 묵의 질감이 생겼다.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서 서서히 익힌다.
유리그릇에 들기름을 바르고 익힌 액체 묵을
부어서 식힌다.
육수는 여름에는 찬 육수가 좋겠지만 초 겨울이니 따뜻하게 먹으려고 채수와 조선간장 액젓 소금으로 간했다.
식힌 묵을 썰어 담고 김치 송송
계란지단 김가루 파로 장식을 했다.
맛은 뜨끈하며 묵의 향이 가득했다.
먹다 보니 예전에 남편이 묵사발 요리를 한 것이 생각이 났다.
여름이었는데 시원한 묵사발을 잘 만들고는
식탁으로 큰 그릇 통째로 옮기다가 엎어서 진짜 묵사발을 만들었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남편은 묵사발을 그다지 좋아 하진 않는다. 아니면 묵을 먹으면 타닌 성분 때문에 변비가 생겨서 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집에서 해먹은 묵사발은 또 다른 진정한 맛이다. 해 먹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냉장고 털이를 하면서 냉장고는 될수록 깊이가 깊지 않고 한눈에 보이는 것이
좋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재료를 발견하다가 깜짝 놀라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