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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깃든 물건 정리하기-1

사는 맛레시피(정리의 맛)

by 달삣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정리의 시작은 작은 건전지였다.

그 작은 건전지가 큰일을 해냈다. 쓰지도 못하고 장렬히 전사한 것들이 부수기수인데 그 건전지도 그중 하나이다.


1997년 산 방치 하다 쓰지도 못하고 버린 건전지 때문에 옛 추억 어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26여 년 전에 추억으로 감싸여적체된 물건들을 버리자'

오랜만에 옛날 20년도 더 된 비디오테이프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베란다에 방치해 둔 비디오카메라가방을 꺼내보았다.


가방에는 고장 난 카메라, 여러 개의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뜯지 않은 1997년도 산 AA 건전지가 비닐에 쌓여 녹이 쓴 채 들어 있었다. 건전지는 제 할 일도 못하고 쓰레기가 돼버렸다.


이참에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usb로 변환하기로 했다. 겉에 쓰인 메모를 보니 아들 어릴 때 재롱잔치하던 것 입학식 결혼식 부모님 회갑연등이다.


세운상가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usb로 변환시키는 업체에 맡기고 오래된 비디오카메라는 쓸 수 없이 고장이 나있어서 쓰레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추억 서랍속도 정리를 시작했다. 십 년도 넘은 아이패드처분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손목시계 동전 단추등 서랍에서는 과거에 쓰던 물건들이 줄줄 이 나온다.


20여 년 전에 사서 기타도 치지 않고 방치해 둔 기타를 옛날 악기점에 실비로 팔고 재미 삼아 손목시계를 들고동묘로 갔다.


메멘토리 정신을 다짐하며 과거와의 결별하는 느낌으로 손목시계도 거저 버리다시피 팔았다. 요즘 레트로물건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있으니 필요한 분들에게는 유용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묘에 가보니 옛날 물건들이 많았다. 우리 집서랍에도 동묘가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묘에 오니 추억에 사로잡힌 노인들이 많다.

'그땐 그랬지'

하면서 순두부처럼 말캉해진 노인들이 헌책방 냄새나는 곳곳을 천천히 걷는다.


버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다 버려도 추억이 깃든 물건은 참 버리기가 어려웠는데 쓰지 않고 버린 작은 건전지가 큰일을 해냈다. (1997년 검사 건전지) 26년 전이라는 세월을 각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고 중요한 것은 현재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동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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