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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

재미한 알

by 달삣


'겨울을 나려는 아파트'


2000년대 지어진 아파트는 여기저기 점검을 해야 하는데 올겨울을 잘나려면 변압기체크를 해야 하고 물탱크도 점검해야 한다고 며칠 전부터 관리실에서 방송을 해댔다.

" 수목 양일간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단수되고 엘리베이터도 안되고 전기도 나가니 각세대에서는 물을 받아놓으시길 바랍니다...."


4시간 동안 물과 전기 공급 안된다고 대비하라는 방송이었다. 겨울만 되면 동파소동이 한 번씩 나는 세대가 있었으니 아파트 주민들도 다이해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수요일 첫날은 조조 '나폴레옹' 영화를 보고 포실한 만두까지 먹고 오니 엘리베이터도 작동 중이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


오히려 단전 됐을 때 김치냉장고 안 성에가 떨어져 나가서 덕분에 냉장고 청소도 하고 불편한 게 없었다.


둘째 날은 비도 온다고 하니 집에 있기로 하고 점심으로 먹을 콩나물국밥용 국물을 일찍 감치 만들어 놨고 물도 넉넉히 받아놨다.


' 두둥'


진짜 딱 열 시에 단수되고 와이파이가 안 되면서 매일 듣는 FM라디오도 갑자기 꺼져버렸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보니 엘베의 숫자 불빛이 보이질 않아 암전이됐다.


'조~용'


사람은 식물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무언가 할거리 찾았는데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 읽지 않은 무라카미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읽기 시작했다.


활자가 쏙쏙 눈에 들어오며 집중이 됐다.


단전 단수된 환경에서 책을 읽으니 그동안에 보았던 좀비출몰. 지구종말. 전쟁. 아파트 붕괴등을 주제로 한 재난 영화들이 꼬리에 꼬리 물며 생각이 났다.


갑자기 사는데 기약 없이 전기가 끊기고 물이 단수되면 어떡하지? 하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재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현실이 아니잖아'하지만 걱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네 시간 동안 생활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며 그동안 끊임없이 조바심치며 살아왔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마치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노래 가사처럼 오랬만에 깊은 침묵이다.


'휴'


순간 삶의 쉼표를 느꼈다.


조금 있다가 먼저 전기가 들어왔지만 그 고요가 좋아서 라디오를 계속 꺼놨다.


무라카미책 속에 발췌한 글 중 지금의 상황과 맞는 문장이 있어서 옮겨 적어본다




그곳은 폐쇄된 유원지 같다. 사람그림자 하나 없이 텅 비어 있고, 너덜너덜한 포스터가 바람에 퍼덕거린다.
페인트칠이 벗겨나갔고, 펜스는 녹슬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생각한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그런데도 나는 거기에 있다. 입구도 출구고 어딘지모를, 닫혀있는 쇠락한 유원지에.
_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4시간의 단전 단수로 해서 잠깐 든 생각이 무라카미 말처럼 빈시간이 캐러멜처럼 달콤했다.


'그나저나 물을 넘 많이 받아 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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