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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사슴 Aug 18. 2020

먹어봤는데 별로야

잘 못 만들어진 요리가 선택에 미치는 영향

가리는 음식이 없다.


동남아 여행을 갈 때에도 '고수는 빼고 주세요'같은 문장을 외울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고수 향이 그리워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갈 정도다. 남들은 비려서 잘 못 먹는다는 해산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먹는 것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먹거리가 있으면 도전해보는 편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축복받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뭔가를 먹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별 생각 없이 감바스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 사실 새우 못 먹어...'같은 소심한 고백을 듣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왜 주문하기 전에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그래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자 할 때에는 무엇을 못 먹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나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그 이후 가까운 시일 내에 식사를 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것과 무슨 음식을 못 먹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알레르기 같은 것이 있어서 먹으면 응급실에 가야 한다거나

어릴 적에 잘못 먹어서 큰 화를 입은 적이 있다거나

그냥 맛이냐 향,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이야기 들어보니 이상할 것 같아서 안 먹겠다는 경우도 있다!!


신체적으로 안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일이 많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이 끔찍했다면 다시는 그 음식을 찾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누군가가 그것은 그때 먹은 것이 이상한 것이라며 열심히 디밀어도 먹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싫은 것은 분명 싫은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말라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마다 겪게 되는 경험은 모두가 다르고 한정적이기에 우리는 일반화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일반화하고 있는 경우밖에 없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이래, 저런 외모를 가진 사람들 성격은 대체로 이래- 라는 세간의 평가는 그저 사회의 나쁜 편견이라고 무시하기에는 숱한 경험과 사례로 만들어진 빅데이터의 결과일 수 있다.


평소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호의와 친절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역주행하는 렉카차 기사에게서 우리는 사고의 충격을 보듬어줄 따뜻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수십만의 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빅데이터도 오판을 하는 와중에 사람이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일부만 보고 판단한다며 아쉬워하기 전에 사람들이 왜 그 부분을 그렇게 바라보는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 재료는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가지는 볶은 것과 무친 것과 튀긴 것의 식감이 정말 다르다.

생선은 날로 먹는 것과 구워 먹는 것과 삶아먹을 때 맛이 제각각이다.


나라는 재료도 어떻게 지지고 볶아야 상대방이 매력적으로 보는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맛 없어질지언정 튀겨도 보고 삶아도 봐서 맛을 보자. 적어도 누가 슬쩍 찍어먹어 보고는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주변에 그렇더라고 말하는 재료로 남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하지만 나도 자신의 어떤 부분만 맛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질 치즈 스콘

바질 페스토가 비싸고 언제 다시 쓰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야채 코너에서 소량으로 판매하는 생 바질을 사 보았다. 태어나서 바질이라는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보게 되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중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했다.

씻어서 뜯어먹어 본 바질 잎은 아는 듯한 향이 났으나 미묘했다.

빵에 콕콕 박아서 구워보니 알고 있는 그 바질향이 더 진하게 풍겨왔다.

매력이 부족하다면 덜 구워지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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