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곶사슴 Jul 28. 2020

너는 벌써 30평에 사는구나

공간의 크기가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


여러 이유로 살고 있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가세가 기울어 달동네의 단칸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오, 방 3개짜리 집에서 원룸으로 가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차이의 평수 집으로 이사 가는데 그렇게까지 안타까워할 일인가, 어차피 이제 누나도 나가 살기에 평수를 줄여도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베란다의 폭과 다용도실의 유무 등등이 생활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모를 것이라며 더 크게 안타까워하셨다.


그 후로 5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표현하기 위해 주거공간을 묘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어둡고 습하고 침침하게, 최대한 비좁아 보이도록 묘사할수록 등장인물의 삶은 다양한 이유로 꼬여만 간다. 그런 공간에 있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지 이미 문제가 많아서 그런 공간까지 가게 된 건지...


실제로 좁은 공간이 사람을 찍어 누르는 효과는 굉장하다.

공간이 좁으면 마음에 드는 가구를 놓을 수도 없고 이는 내 공간을 취향껏 꾸며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취향이 없는 삶이란 선택의 여유가 없는 삶이라는 뜻이고, 이는 사람의 마음을 여러 의미에서 깝깝하게 만든다.


작은 집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에는 디자인을 미처 고려하기 힘든 생필품들을 숨길 곳이 없어 어떻게 해도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반대로 맥시멀리즘을 추구하자니 그럴 돈이 있으면 한 평수라도 더 넓은 공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적절함을 찾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굴 만나도 집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어느 지역 집값이 오른다더라. 어느 지역에 청약이 이번에 좋은 조건으로 풀린다더라. 이번 부동산 정책이...


이미 내 나이에 자동차의 파도는 한 번 지나갔다. 살 놈들은 이미 다 샀고 살 이유가 없거나 여유가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렇게 대충 자동차의 사이즈가 정해진 다음은 집인 모양이다.


누군가 사람은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을 그런 단위로 생각하자니 조금 서글프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삶의 크기를 가늠할 다른 단위가 떠오르지 않는다. 자동차 배기량은 아파트 평수만큼 강하게 와 닿는 뭔가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파트 평수를 통해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없는 연봉의 크기를 은근슬쩍 자랑하거나 서로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해보곤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의 영향은 비단 아파트의 크기와 그 안에 담긴 물건의 취향 등등에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몇 명 규모의 직장을 다니는 가는 내가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똑같은 직무에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버는 돈이 다르고 더 커질 수 있는 크기가 다르다. 심지어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법은 꼭 300명 이상의 기업에서만 지켜진다.


작은 곳에 있다 보면 주변의 다른 문제들이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 나머지 내가 서 있을 공간이 부족해 자꾸만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다가 어디에도 써먹지 못하는 기이한 형태의 무언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흔한 말로 커리어가 단단히 꼬여버리는 경우.



어쩌면 아버지가 좁은 집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신 것은, 조금이라도 작아진 공간이 우리 가족의 삶을 어떤 좋지 못한 형태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는 아니었을까.


그래도 뭐, 재료를 잘 섞어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미적지근하게 덥히지만 않는다면 모양은 엉망진창일지언정 맛있는 과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 당장 불타고 있는 오븐에서 큰 오븐으로 뛰쳐갈 수 없으니, 어떤 모양이 되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현명한 길일지 모르겠다.



다쿠아즈

흘러내릴 정도로 묽은 반죽을 짤주머니에 담아 적당한 형태로 짜서 구우면 보들보들하고 도톰한 빵이 만들어진다. 그 사이에 버터크림과 버무린 무언가를 넣어 샌드처럼 만들어먹는 과자. 만드는 과정이나 비주얼이나 마카롱이랑 비슷한데 마카롱보다는 덜 까다로워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한다.


나는 가뜩이나 오븐도 작은데 반죽을 너무 빽빽하게 짜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적당히 칼로 잘라서 사이에 누텔라를 발라 놓았더니 작업실 친구들이 겨울잠 자기 전 곰처럼 어기적어기적 와서 집어먹는 다쿠아즈 비슷한 무언가가 되었다.


완전히 망한 건 줄 알았는데 카페에서 파는 다쿠아즈를 사 먹었더니 맛이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란 과자.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밍의 맙소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