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를 염탐하는 방법
어째선지 몸담은 회사마다 들은 질문입니다.
옆 회사에서 어떻게 마케팅하고 있는지, 지금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냐고.
당신이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답답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검색도 해보고 통계자료도 찾아보고 이런저런 것들을 열심히 뒤져보지만 그곳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아니고서야 다른 회사의 내부 사정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밖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도 합니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줄 알았던 회사가 사실은 안에서부터 곪아있는 정치의 전당이었다거나, 남몰래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고 있었다거나, 직원들도 몰랐는데 몇 달째 직원들의 건강보험료가 밀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항상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한참 뒤에 알려집니다.
거래처 중에서는 회사 대표이사가 바뀌는 바람에 세금계산서 발행에 문제가 생겨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담당자가 그 사실을 우리 덕분에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답니다. 껄껄. 내부 직원도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무당도 아니고 이중간첩도 아닌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케터가 되어버린 죄로, 상대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꾸준히 염탐하며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다 하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상태를 보고 무슨 상황인지 유추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손이 느려서 잘 못하는데요. 남들이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하는 것을 가끔 보곤 합니다. 한국 남자는 거진 그래요.
아무튼,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공통적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찰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활동은 꼭 상대방을 신경 쓰이게 하거나 공격할 허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빌드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행동입니다. 상대방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카드가 뭔지 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시작하기에 앞서, 경쟁사의 연차나 규모가 어찌 되었든 경쟁사의 마케터도 당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마케터라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는 넓은 업무범위를 자랑하는 '잡캐'면서 각자 남들보다 잘 하는 분야가 있는 사람들이기는 합니다만, 그들도 출근하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운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반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도 무서워하구요. 내가 모르는 것은 그들도 대체로 모릅니다. 내가 하는 실수를 그들도 하구요. 가끔은 큰 기업이기 때문에 작은 회사 같으면 난리가 났을 치명적인 실책도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도 많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쫄지 맙시다.
일단 경쟁사의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내보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봅시다.
회사는 방안에 틀어박힌 상태로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자기 어필을 해야 하는데요. 기자들이 써주는 보도자료가 있을 수도 있겠고, 자사 블로그 같은 채널을 통해 떠드는 방법이든 뭐든 자신들의 업적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외부 미팅을 나가서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핸드폰이든 노트북이든 부지런히 우리 회사에 대해서 검색해 봅니다. 보도자료는 얼마나 내고 있는지, 투자를 받았다면 어떤 라운드를 얼마나 받았는지 등등을 체크합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대표들의 습관입니다. 안 그러는 대표 못 봄.
그러고 보니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주 들어가서 확인하는 사이트는 여기랍니다.
총 투자금이라던가 기업 최근 소식 등이 업데이트되는 곳이니 여러분도 상대 기업이 궁금하거나 기초자료 조사를 할 때에는 참고해두면 좋습니다.
이렇게 영업 활동이든 투자유치든 외부 인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 상대방이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대체로 정상적인 구조의 회사라면 꾸준히 보도자료를 냅니다. 자주 언급되고 주목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파괴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보도자료 등을 위해 기자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보도자료를 뿌리거나 기획기사를 쓰는 행동들을 PR이라고 하는데요. 이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자 다시,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경쟁사 기업 이름으로 검색을 해 봅시다.
언제 마지막으로 뉴스가 났던가요? 없나요?
기본적으로 포털사이트의 [뉴스] 탭에 실리기 위해서는 매체를 가지고 있는 회사에 돈을 냈거나 기자들 밥도 사주고 차도 마시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기사의 퀄리티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데요. 누가 봐도 회사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보도자료 형식의 글이라면 매체를 샀을 가능성이 높고, 기자가 양념을 좀 친 것 같은 글이거나 다른 주제를 취재하다가 언급되는 형태의 글이라면 기자와의 관계 형성이 어느 정도 되어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후자가 더 PR 일을 잘 하며, PR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아무튼 기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은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또는 전혀 없다는 것은 보도자료를 만들어 뿌릴 시간이나 인력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경쟁사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군요! 가끔 정말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보도자료를 안 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흔한 일은 아닙니다.
기사가 있다면요? 솔직히 잃을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으며, 최근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꼭 보도자료로 알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블로그 게시글, SNS 계정에 글이 올라오는 빈도와 퀄리티를 통해서도 회사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말 바쁠 정도로 성장하고 있어서 콘텐츠를 못 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그런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도망간 긴박한 상황일 때가 많습니다.
항상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우리 회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면 왜 그럴까요?
상대방도 똑같아요.
경쟁사와 관련된 검색이 끝난 것 같다면 다시 업계와 관련된 키워드로 검색을 해 봅시다. 팔고 있는 제품의 키워드를 추려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해당 키워드로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뜨나요?
네이버의 경우 검색광고, 쇼핑 광고, 블로그 게시글 등이 뜰 텐데, 그중 상위 노출이 어떤 모양으로 나오고 있는지를 체크해 보고, 뉴스가 나온다면 봤던 기사들이라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공통적으로 반복되어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을거구요. 어떤 사물이나 상황, 기관 등이 언급되기도 할 겁니다. 친절한 기자분이라면 주석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그럼 그걸 다시 검색해 보세요. 나무위키를 수동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위키백과의 편리함은 읽다가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해당 단어 (키워드)를 눌러 그 개념에 대한 문서로 넘어가거나 주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텐데요. 대부분 공식적인 문서에는 그런 기능이 없기 때문에 수동으로 검색해서 지식을 늘려간다고 생각합시다. 수동이지만 확실합니다...
굉장히 테크니컬하고 멋진 활동을 기대했겠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활동은 검색의 연속이군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포털사이트, 검색엔진은 사실 굉장한 기술의 산물입니다. 정보를 찾고 얻어내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주고 연관된 지식까지 쉽게 얻을 수 있게 개발되었죠.
그리고 사실, 대부분 이런 간단한 검색도 잘 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문화의 발전은 핑거 프린스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챗 GPT나 유튜브가 거짓말을 해도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보의 누락도 문제가 됩니다. 진짜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칠 수 있죠. 그러니 우리는 하나만 보지 말고 여러 콘텐츠를 두루두루 보고 검색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합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누군가 우리에게 경쟁사나 시장 동향을 아냐고 물어보는, 어찌 보면 무례한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남들이 보기에 시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이 되거나, 생각보다 사업이 속도가 나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짜로 어떻게 일한다는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다음 스텝은 뭔가요?'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사실 그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내일 벌어질 야구 경기의 결과를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데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도, 현재 상황이 이러하니 앞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시장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업무 이해도는 천지차이입니다. 지금 나의 회사가 어떤 흐름 속에 놓여있는지 파악한다면 광고 클릭률 같은 작은 수치에 대한 고민보다 더 큰 단위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