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마진이 붕괴된 도시, 2015년의 파리

by 김명규

#1. 블랙 스완의 출현: 1월의 파리


2015년 1월 7일.

내가 탄 비행기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상공을 1시간째 배회하고 있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은 모호했고, 승객들의 웅성거림은 불안으로 번졌다.

가까스로 활주로에 바퀴가 닿았을 때, 나는 단순히 '관제 사정'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공항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에 내렸을 때, 공기의 밀도가 달랐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거리를 메웠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친구 J의 집은 하필 폴리스라인 안쪽인 11구(11th arrondissement)였다.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를 낑낑대며 올라갔을 때, J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바로 옆 골목이야.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오전 11시 30분, 검은 두건을 쓴 괴한들이 편집국에 난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편집장과 만평가 등 12명이 사망했다.

범인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유유히 검은색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신성시하는 대상을 풍자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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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시장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확률의 사건이 실제로 터지는 것을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고 부른다. 그날,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던 파리 위에 검은 백조가 날아들었다.


펜이 총에 꺾인 날, 내가 믿었던 '인과관계'의 법칙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2. 오폭인가, 고의인가: 10월의 쿤두즈


불안의 전조는 계속됐다.

우간다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던 같은 해 10월 3일,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내가 속한 '국경없는의사회(MSF)'의 트라우마 센터가 미군의 폭격을 맞았다.

새벽 2시, 환자들이 잠든 시간이었다.

30분간 지속된 폭격으로 의료진 12명과 환자 10명(어린이 3명 포함)이 목숨을 잃었다.


"오인 사격이었다." 미국 측의 해명은 건조했다.

하지만 MSF는 교전 발생 전부터 수차례 병원의 정확한 GPS 좌표를 미군과 아프간군에 통보했다.

좌표가 명확한 병원을, 그것도 30분 넘게 정밀 타격한 것을 단순한 오류로 볼 수 있을까.


국제법상 전시에도 병원은 절대적인 보호 구역이다.

그것은 인류가 합의한 최소한의 '내부통제 기준'이다.

전 세계 프로젝트 현장에서 추모 묵념이 이어졌다.

나도 우간다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묵념에 참여했고, 미국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고 다짐했다.

’안전지대(Safe Zone)’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기로.




#3. 소프트 타겟: 11월의 파리


그리고 운명의 11월 13일, 13일의 금요일.

나는 다시 파리에 있었다.

우간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디브리핑을 위해 들른 참이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픽업 오기로 한 친구 B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참 뒤, B로부터 문자가 왔다.

"교통이 막혔어. 지하철 타고 우리 집으로 바로 와."


툴툴거리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내 생사를 갈랐다는 것을.

B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TV 속보가 쏟아졌다.

파리 시내 6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축구 경기(프랑스 vs 독일)가 열리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밖에서 자살 폭탄이 터졌고,

록 밴드 공연이 한창이던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인질극이 벌어졌다.

식당, 카페, 공연장... 무고한 시민들이 불금을 즐기던 곳들이었다.


보안 전문 용어로 이를 '소프트 타겟(Soft Target)'이라고 한다.

정부 기관이나 군사 시설 같은 '하드 타겟'은 뚫기 어려우니, 경계가 느슨한 민간인을 노리는 가장 비열한 방식이다.

내가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를 탔다면 나는 '사망자 130명'이라는 통계 수치 중 하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날 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도시는 곧,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을.




#4. 손절매의 시간


밤새 사이렌 소리가 샹송 대신 거리를 채웠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국경은 폐쇄됐다.

B의 집은 파리 북부 외곽이었는데, 테러범들의 도주 경로와 겹쳤다.

우리는 불을 끄고 BBC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창문 밖으로 경찰차의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나는 원래 파리 본부 취업을 꿈꾸고 있었다.

화려한 유럽 생활과 인도주의적 실천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최적의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5년에 겪은 세 번의 사건은 내 위험 선호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주식의 주가가 계속 떨어져 회복 불가능한 손실이 예상될 때,

과감하게 주식을 파는 것을 '손절매(Stop-loss)'라고 한다.

나는 파리라는 도시에 걸었던 내 꿈을 손절매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가자. 안전한 곳으로."


거창한 사명감도, 커리어에 대한 야망도 생존 본능 앞에서는 사치였다.

그날 밤, 나는 이불속에서 떨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신체적 안전'이라는 기초 자산 없이는, 그 어떤 삶의 가치도 적립될 수 없음을.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