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원자가 아니었다 (1): 빈곤 포르노의 함정

by 김명규

#1. 히말라야의 허브, 그리고 대기업의 화장품


네팔에서의 1년. 나는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었다.

국제개발 프로젝트의 회계 지원과 모니터링 역할을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미션은 명확했다. 소득증대.

히말라야의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허브 채취에 매달렸다.

아이들까지 산을 타느라 학교는 텅텅 비기 일쑤였다.

그렇게 딴 허브를 헐값에 넘기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는 허브에서 에센스를 추출해 부가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고품질 원료를 한국의 대기업(LG생활건강)에 납품하여, 그 수익으로 주민들의 소득을 늘리고 아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의 거창한 청사진이었다.

나는 이 착한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발 3,000~4,000m의 생산 현장을 직접 점검하러 떠났다.




#2. 무릎 연골과 맞바꾼 개발활동


히말라야에서 지낸 2개월.

그 중 1개월은 오로지 산만 탔다.

그리고 그 산행은 낭만적인 트레킹이 아니었다.

군시절 행군을 상기시켰다.

프로젝트 사이트를 방문하기 위해 꼬박 한 달을 걷고 또 걸었다.

하루 8~10시간 꼬박 걷는 강행군이었다.


"당분간 걷지 마세요. 무릎 다 나갑니다."

히말랴야 주요 거점 마을에 있던 유일한 의사. 네팔인 한의사는 혀를 찼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동료들도 다리를 절뚝였다.


연골을 갈아 넣으며 산행을 계속한 이유는 단 하나.

나의 고생, 그리고 땀방울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


나는 그 숭고한 마음 하나를 연료 삼아 버텼다.

내가 가진 지식과 노동이 그들의 가난을 구제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산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3. 내가 상상했던 '불행'은 그곳에 없었다


한국에서 TV로 보던 네팔은 늘 도움이 필요한 곳이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 슬픈 눈망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


미디어는 늘 그들의 비참함을 전시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그들이 항상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했고,

내가 가서 에센스를 팔아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것은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나.


막상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도착한 마을의 풍경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흙바닥에서 굴러다니며 까르르 웃어댔고, 어른들은 차(네팔에서는 찌야라고 부른다. 차이는 인도식 명칭)를 나눠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부부싸움을 하고, 화해를 하고, 이웃과 수다를 떠는 그들의 일상은 서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곳에는 희노애락이 있었다.


내 동정심은 그들의 건강한 웃음소리 앞에서 갈 곳을 잃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낙후되었을 뿐, 삶의 질이나 행복의 총량까지 낙후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찌들어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보다, 그들의 눈동자가 훨씬 깊고 맑았다.




#4. 빈곤 포르노, 그 불편한 필요악


그때 처음으로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극적인 빈곤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소비하는 행태.

우리는 왜 그들의 삶을 편집하는가? 왜 그들의 웃음은 잘라내고 눈물만 클로즈업하는가?


NGO의 활동을 들여다보면, 그 불편한 진실의 일면이 보인다.

펀딩(Funding). 비영리 단체가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부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부 시장의 작동 원리는 냉혹하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사진에는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반면, 처참하고 불쌍한 모습에는 기부금이 몰린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기부 문화와, 실적을 내야 하는 조직의 생리가 맞물려 가난의 전시를 강요한다.

나는 이것을 '필요악'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죄책감이 들지만, 이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는 아무리 숭고한 '선의'도 작동할 수 없다.

슬픈 아이들을 팔아 모은 돈이 있어야, 역설적으로 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공장을 돌릴 수 있다.

회계사로서의 이성과 활동가로서의 가슴이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5. 도움을 받은 건 누구인가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던 날, 나는 내 배낭보다 더 무거운 부끄러움을 짊어져야 했다.

나는 그들을 구원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거대하고 모순적인 국제개발 산업의 시스템 안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왔을 뿐이었다.


그들의 일상은 나의 오만을 비웃듯 단단하고 평온했다.

도움이 필요한 건, 어쩌면 1인당 GDP 3만 달러의 나라에서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릎 연골은 닳았고, 세상을 보는 시선은 차가워졌다.

장부의 숫자와 현장의 진실 사이.

나는 그 경계선 위에서 비로소 진짜 인도주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