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확정 통보 받고 만감이 교차하다.
스타트업 폐업 스토리 1. 회사가 헤어질 결심을 하다.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가 있다.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나는 2022년 회사의 헤어질 결심을 경험했다, 자금난과 같은 급박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기보다는, 냉철한 판단으로 회사가 결심을 하고 헤어진 경우이다.
처음엔 다음 분기를 계획하고 있던 나는, 너무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를 통해 알게 되고 배운 것들이 있어 이를 적어보려 한다.
아름다운 경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경험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이런 일도 겪을 수 있구나! 정도이고,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과 다른 이들, 그리고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불과 3개월 전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회사의 폐업 결정 전후의 일들이 종종 떠오른다. 때로는 직원의 입장에서 '이 결정이 최선이었을까? 비즈니스적으로 수익 중심적으로 생각했을 테고, 장기적인 전망은 이때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면에 오너(Owner)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 마이너스 수익에 본인이 생각한 방향과도 멀어졌을 테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현재 상황이 모두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미련과 답답함이 남아서다. 제대로 부딪쳐보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과 동료들과의 갈등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노력하지 못하고 중단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몫한다.
무언가에 대한 원망, 미움, 화남, 걱정보다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크다. 동료들 각자의 능력과 강점이 있음에도 이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팀장으로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내 책임처럼 느껴진다.
회사가 어떤 곳이었는지 설명하자면, 필리핀과 영국 지사를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하던 에듀테크 엑셀러레이팅 회사다. 스타트업 회사였고, 이번에 한국 지사가 폐업하게 됐다.
2022년 10월 9일, 일요일
일요일 저녁에 받은 문자 '통화가 가능하냐는 오너의 문자'
한국 오피스의 폐업 결정을 전달받다.
화요일에 회의를 할 예정이었는데 '급한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온라인 회의를 시작했다. 미안한 사람 중 하나라며 꺼낸 이야기는, 한국 지사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 어.... (잠시 침묵)... 네.'
그 이후의 대화는 짧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담담했던 것 같다. 이것도 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예상을 벗어난 일정같이 말이다. 전략팀이었던 우리는 바로 돌아오는 화요일에 향후 업무에 대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취적인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기에 마치 일정 취소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폐업의 소식 듣고, '이해합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회의 끝나고 나니 생각나는 것.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코도 석자인데 누가 누굴 이해한다는 거지?
순간 내가 답답해졌다.
나는 그저 덤덤했다. 놀랍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너도 힘들게 결정이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은 '이해합니다.'였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돼!'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오너의 입장에서 4년간의 투자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오너는 심사숙고를 깊이 하는 타입이라 일단 결정을 내리면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무게를 이해했다. 그렇게 일요일 회의는 끝났다. 대단한 월요병이 생길만한 이벤트였다.
그러나 문제는 회의가 끝난 후였다. 나는 결국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덤덤한 성격이었지만, 그 소식이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답답한 마음이 밀려왔지만, 후속절차에 대해 물어보지 못해 일단 출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오너가 출근하다. 팀장들과의 점심. 팀장들보다 오너가 불편함을 느낀 점심.
점심 이후 팀원들과의 개인 면담.
직원들 면담이 시작됐고 빠르게 끝났다. 어떤 팀원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팀원들도 있었고, 2개월 전부터 징조를 느꼈던 동료도 있었다. '내가 둔했던 건지? 그러한 징조를 무시하고 끝까지 해야 할 일은 하려고 했던 걸까?' 그날그날 최선을 다했기에 큰 후회감은 없었지만, 더 잘 해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있다.
어쨌든 모든 직원에게 통보가 되었고, 그 순간부터 직원들끼리 서로를 보는 것이 어색해졌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서로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나눌지 몰랐던 것 같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이력서 업데이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과정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과를 무시할 수 있을까?
오래전 전 직장의 대표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국민은행 직원으로 입사했을 당시, 허드렛일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본인은 타회사로 이동했고 그 사이 국민은행이 성장하여 본인의 이력도 든든해졌다고 했다. 결국, 내가 퇴사를 했어도 그 회사가 잘 되어야 나에게 득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럼, 나는 앞으로 이 회사를, 그리고 이곳에서 했던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리 스스로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힘이 빠진다. 그렇다고 경력을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일을 하다 보면 다 드러나기 마련이기에 내 관점과 회사의 관점에서 좋은 경험을 사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폐업 관련 인사팀에서 전사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다.
백업이나 PC 반납이 필요 없으며 회사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메일이 오다. PC는 포맷하여 반납할 것. 번복, 혼란, 불편
'영국과 필리핀 오피스는 운영하는데 왜 백업은 하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사 업무 시스템을 운영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회사가 폐업하는 상황에서 백업까지 요청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고 이제 각자 새로운 커리어를 찾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애쓰고 노력했던 업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치 집주인이 계약 종료 전에 이사 비용을 줄 테니 당장 나가라고 하는 것처럼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원칙으로 필리핀 담당자와 백업 마무리를 했고,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내가 한 업무를 정리할 수 있었다.
폐업의 결정 자체보다 불편한 상황은 후속처리에서 발생했다.
조금은 덜 성숙된, 배려되지 못한 방식으로 인해 마음이 상한 것이다. 마무리해야 하는 퇴직절차, 보상방식이나 이직을 위한 서류처리 등이 매끄럽지 못했다.
확정이 된 이상, 직원들은 후속절차에 대한 궁금중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후 전달된 폐업에 따른 지침에 대한 메시지들은 번복이 되었고, 인사팀도 동료들 그 누구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 조금 답답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고정의 불편함이 단순히 스타트업이어서, 체계가 없어서였을까? 그러기에는 회사를 퇴사하거나 이직해 본 사람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의문이 들었다. 폐업하는 상황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마지막 정리했다면, 서로 웃지는 못할망정 불편함을 안고 퇴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폐업의 결정은, 결국 모든 사람을 동일선상에 놓인 상태로 만든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일했지만, 경력 간, 부서 간, 연령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 팀장과 팀원 간의 수평적으로 일하지만 수직적 의사결정 관계도 있었다. 그런데, 이 결정으로 인해 모든 직함, 포지선이 제로로 돌아간 느낌이다. 종종 '회사를 나가면 우리 다 똑같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폐업의 결정은, 모든 사람을 동일선상에서 누구나 똑같은 상태도 만든다. 직함, 소속이 더 이상 의미나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없기에, 직장인이 아닌 그래서 모두가 동일하고 동등하게 된 느낌이었다.
동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태도였고, 몇몇은 이직 준비에 돌입하며 조언을 구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회사 업무와 이력서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그날 전체 통보를 받으면서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다리가 부러지신 상황이라 수술과 회복에 간호가 필요했다. 이 시점에 절묘하게 폐업으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전화위복같이 느껴졌다. 감사히 여겨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결국 어머님의 치료를 위해 주어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2022년 11월 29일
또 다른 시작.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설렘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다.
'동료가 보상'이라는 말을 뒤늦게 더 절실히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피드백을 주었던 팀원에게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 팀원의 능력과 타이밍이 좋았다. 2022년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결정되었다. 그 소식에 나 또한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리는 내일을 위해 방법을 찾는다. 어떤 방식으로는 우리가 직장인으로 남는 한, 계속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더 발전된 내일을 위해 스스로 회복하려고 한다. 다만, 시작하기 전에 좀 더 평온하게 차 한잔하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회사와 직원 모두 여유가 없었지만, 회사가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역할이 회사의 책임 있는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폐업임에도 좋은 경험으로 생각했을 것이기에 안타깝다. 끝까지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모습에 우리는 다시 한번 좋은 경험과 모습을 보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는 안타깝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도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내가 조금 지혜롭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만약 비슷한 일이 또 생긴다면, 지금보다는 더 통찰력을 가지고 함께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찾아보려 노력할 것이다.
프로젝트 종료 시 우리는 랩업(wrap-up)과 후속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 실행한다. 그러며, 회사의 폐업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종료할 때도 그러한 원칙을 반영했다면 좀 더 건강한 마무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 Wrap up과 후속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행한다. 그런데, 회사의 폐업이라는 그 무엇보다도 큰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었을까? 만약 이런 상황을 겪거나 처한 사람, 또는 진행을 시켜야 하는 사람이라면 건강한 이별을 위해 반드시 한 번은 헤어지는 방법을 고려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