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시작된 징조,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발표가 있었다. 회의를 준비하던 HR팀은 평소처럼 안건을 준비했고, 해외에 있던 오너와 온라인 회의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평소처럼 시작된 회의, 예상치 못한 제안을 내놓았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오너가 개입하지 않고, 각 팀에서는 독립적으로 서로 의논하여 의사결정을 하라는 제안.
순간, 회의실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당장의 투자 이익보다 조직 내 프로세스 정립과 투자 선택 시 고려될 방법론 수립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4년간 엑셀러레이팅 회사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팀으로 움직여야 할 조직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방향성도 맞지 않아 점차 삐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순간이, 회사가 이미 헤어질 결심을 시작한 때였는지 모른다.
분위기는 무거웠고,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날 이후 회사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커지지 시작했다.
"앞으로 두 달간 회사의 모든 업무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모든 업무에 개입되어 문제가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고, 여러분이 스스로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오너는 평소 신중한 편이라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릴 분이 아니라 생각했다. 회의 종료 후 동료들끼리도 '도대체 무슨 일이냐'라고 묻기 시작했지만, 심지어 한국 오피스 대표님조차 이유를 알지 못하시는 듯했다.
리더 회의에서도 폐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나중에야 한국 오피스 대표님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쨌든,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게 웬 날벼락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제안 이후, 우리는 문제 해결보다 자리 잃을 불안감이 사로잡혔고, 업무에 몰입하기 어려운 불안정환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명확한 이유도 모르고 그런 불안 속에 있으면서, 왜 그때 더 집요하게 배경을 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 일상 #1. 변함없는 하루하루,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다.
그 후, 나는 이직을 고려하지는 않았기에 맡은 업무에 집중했다. 전략기획팀이었던 나는 여전히 오너와 주간 회의를 진행했고, 필리핀 지사와도 주기적으로 회의하면서 업무 툴 안정화와 프로젝트 프로세스 개선 작업을 이어갔다.
9월에는 BSC Q3리뷰와 Q4 플랜을 준비했다. 비록 오너의 결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 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시도라고 믿으며, 프로젝트 개선에 더욱 고심했다.
그 후 일상 #2. 마음가짐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새로 시작된 '팀장 리더십 코칭'
오너의 선언 이후, 팀장들을 위한 리더십 코칭이 시작되었다. 평소 배움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 코칭은 목적과 방향이 불분명한 활동처럼 느껴졌다. 오너의 요청으로 진행된 이 코칭은 처음엔 평범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효율적이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시간이 많았다.
주요 목표는 회사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었지만,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일까? 리더들은 이 코칭의 목적과 의도를 각기 다르게 해석했고, 정작 오너의 정확한 의도 파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계속 그 회의에 열심히 임했을까?
첫째,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둘째, 오너의 요청이지만, 리더들의 원활한 소통과 자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활동이라 생각했다.
셋째, 코칭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팀워크나 업무 효율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마음가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눈에 보이는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졌던 것 같다. 솔직히 모든 것을 꺼내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그만큼 서로의 경험과 의견이 너무도 달랐고, 상처도 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오너가 고려하는 회사의 방향과 직원들이 행하는 업무의 방향이 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오너는 원칙과 방향, 그리고 모두가 하기로 한 것은 해야 한다는 믿었다. 반면, 직원들은 각자의 색깔이 달랐고 일하는 방식도 사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서로가 align이 되기 어렵다고 오너는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오랜 경력의 팀장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열정보다 체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자율적인 회사라고는 하지만, 의사결정이 항상 수평적이지는 않아 오너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여러 규칙을 따라야 하다 보니, 팀장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오랜 습관을 바꾸기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 오너가 바라던 회사의 방향과 한국 오피스 대표 및 직원들이 생각하는 방향 간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조금은 "~할 걸" 하는 후회가 있다.
첫째, 오너의 의도를 직접 물어봤어야 했다는 후회가 있다. 솔직한 답을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효율적인 생각과 감정 낭비를 줄이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본질을 깊이 파고들어 충분히 해볼만큼 해봤어야 한다. 기존 업무와 팀장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더라면 후회가 덜했을 것이다. 팀별로 업무 프로세스 수정 요청을 많이 했던 만큼, 그들의 요청을 좀 더 폭넓게 수용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셋째, 원칙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했다. 업무적으로 나는 비합리적이지 않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스타일로 일을 하고 상황과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음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조직에 들어온 이상, 원칙이나 기준을 우선 따르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고, 그들이 이 원칙을 따르길 바랐다.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보다 폭넓은 시야로 접근할 것이다. 결국 서로의 배려는 업무 성과를 높여주고,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말이다.
두 달 후 회사는 결국 폐업을 결정하고 진행 프로세스를 통지했다. 이후 폐업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직원들은 반발보다는 이직 활동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모두가 이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이 회사의 폐업은 여느 회사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모든 직원의 퇴직금과 한 달의 보상금이 지급되었고, 퇴사 일정은 각자의 결정에 따라 12월까지 진행되었다. 그래서 조용히 빠르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지인의 사례를 보면,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며 노무사를 찾는 경우도 보았다. 무책임한 스타트업 CEO의 행동과 말에 실망해 한동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우리는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그 폐업 후의 스크래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을 앞으로의 커리어와 개인적인 삶에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선임을 알기에 이렇게 지난날을 회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