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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란 Sep 26. 2023

새로운 도전


12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동화 쓰기.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은 조직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무리 감정 이입을 잘 한다고 해도 대표의 비전은 대표의 비전이다. 일을 할 때 나의 의견보다 항상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내가 창조하고 오로지 나만의 결과물을 남기고 싶은 열망이 10년 차부터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탐색했다. 그림 그리기, 외국어, 악기 배우기, 요리, 칵테일 만들기, 꽃다발 만들기 등등 안 해본 클래스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글쓰기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묵언 수행을 다녀오고 나서였다. 세계적인 묵언 수행 프로그램은 내가 네팔에 머물 때 알게 되었고, 한국에도 있다고 해서 10일 동안 수행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핸드폰이나 책, 글 쓰는 도구를 일체 들고 갈 수가 없다. 오로지 명상만이 가능하다. 나의 걱정과 달리 묵언은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지 못하는 10일이 견디기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이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있지만 기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끄적끄적 댔던 행동은 취미가 아니라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는 것을. 그때부터 진지하게 글 쓰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회과학 전공자인 나에게 픽션에 도전하는 것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논픽션을 쓰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 당시 다니고 있던 번역 아카데미에서 동화 글쓰기 수업도 개설된다는 공지를 보고 호기심에 설명회에 참가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를 좋아했고 폭력이나 치정 등의 이야기를 다루는 성인 소설보다는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책에 훨씬 마음이 갔다. 덜컥 등록해 버렸다. 


싱글인 나는 20년 넘게 동화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과연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제일 먼저 동화의 발전 과정에 대해 공부했다. 우리나라 동화의 아버지 격인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동화 시장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동화기초 수업을 듣고 합평반까지 올라가니 동화가 뭔지는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글벗이 생겼다. 서로 응원을 하며 글벗은 내가 글을 도저히 못 쓸 것 같을 때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렇게 주변에 글을 쓰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기게 되었다. 


동화쓰기를 시작한지 삼 년째 접어든다. 그 사이에 공모전에도 당선이 됐지만 아직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이 나오지 않아 작가라고 불리기 민망하다. 합평 모임만으로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올해 우리 동네에 글쓰기 모임을 본격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글 쓰기 위해서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집에서 글을 쓸 때는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하지만 글벗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며 치유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글쓰기 생태계를 만드는 꿈이 언젠가부터 생겼다. 서울 외 지역에서는 글쓰기 모임이 적고 돈 주고 수업하는 모임 외에 글을 쓸 수 있는 모임이 별로 없다. 


시작에 앞서 네이버 밴드 소모임을 만들고 당근 마켓에도 홍보를 했다. 의외로 밴드가 효과가 있었다. 매주 한두 명이 가입하더니 지금은 육십 명이 넘었다. 9월까지 매주 월수금 글쓰기 모임을 했다. 혼자서 글을 쓰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에 모여 글을 쓰다 보면 놀랍게도 뭔가를 쓰게 된다. 


글쓰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동네에 글벗이 생겨 기쁘다. 내년에는 매일 글쓰기 모임이 돌아가는 우리 동네를 상상해 본다. 글쓰기를 사랑하고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월수금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도 깊어졌다.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언젠가는 함께 글 쓰는 동네 글벗들과 책도 내고 낭독회도 하고 싶다. 동네 글쓰기 모임이 전국 모든 동네에 피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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