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공약

블라인드 회장 선거 (6)

by 나호란

드디어 민아 차례가 되었다. 방송실에는 세 명의 선거도우미가 있었다. 소리 앱 담당자, 카메라 담당자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민아는 방송실 벽 한쪽 옷걸이에 걸린 가면 중에 공작새 가면을 골랐다.


다음은 음성 변환기 앱에서 원하는 소리를 골라 공약 발표와 함께 녹음해야 했다. 로봇, 화성인, 헬륨 등 다양한 음성변조가 가능했다. 민아는 오리 변조 음성을 골랐다. 공작새 가면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거도우미는 민아에게 가면을 씌우고 몸에는 검은 가운까지 입혔다. 후보가 입은 옷이 보일 경우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아, 그럼 시작한다.”


카메라를 담당하는 선거도우미가 말했다.


민아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눈을 살짝 감고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카메라를 응시했다. 방송용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앱을 담당한 선거도우미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후보 4번입니다. 먼저 우울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민아는 음성 변조된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들어도 너무 웃겼다.


“미안. 다시 할게요.”


민아는 가운을 매만지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안녕하세요. 후보 4번입니다. 먼저 우울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선진국 중에서 제일 높은 거 아시죠? 학생들은 왜 이렇게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그 이유는 학생을 고유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보이지 않게 학교에서 우리는 매일 차별을 경험합니다.


저는 3학년 때 반에서 키가 제일 컸습니다. 그래서 많이 놀림을 당했어요. 별명이 꺽다리, 장신, 키다리였죠. 그 말들이 상처가 되어 많이 주눅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접 때리는 폭력보다 언어폭력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긍정적인 말의 침과 공격적인 말의 침을 냉각시켜 실험용 쥐에 주입했습니다. 그랬더니 공격적인 말의 침을 주입한 쥐가 몇 분 만에 죽었습니다. 이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상대방에게도 치명적이지만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은 실천을 제안합니다. 바로 외모 차별 발언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할까요? 센 말에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솝 우화 ‘해와 바람’ 아시죠? 강한 바람으로 외투를 벗기려 하기보다는 나그네가 스스로 외투를 벗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싫어!’ ‘못생겼어!’ 대신 ‘고마워’ ‘넌 최고야!’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전에 우리는 인간입니다. 인간다움을 학교에서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저 기호 4번은 외모 차별을 금지하고 언어폭력을 규정하는 학교생활 규정을 만들겠습니다.”


민아는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가면을 쓰니 오히려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5분은 금방 지나갔다.


“끝! 아주 잘했어. 다 끝났으니까 교실로 돌아가도 돼. 절대 투표 전에 공약 녹화한 내용을 알려서는 안 돼.”


민아는 가면과 가운을 벗고 체육관에서 린을 기다렸다. 뿌듯했다. 뽑히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원 없이 할 수 있어 후련했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 블라인드 선거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아, 잘 찍었어?”


린이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촬영을 마쳐 늦게 체육관에 도착했다.


“응 그럭저럭. 너는?”


얼떨떨한 표정을 한 린은 고개를 저었다.


“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무슨 말 한지도 모르겠어.”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이따 투표할 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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