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선거 당선자

블라인드 회장 선거 (7)

by 나호란

10시에 4학년 이상 전교생이 체육관으로 모였다. 체육관 앞에는 투표소가 세 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투표용지를 쌓아둔 책상과 개표를 하는 책상도 있었다. 학생 선거관리위원과 담당 선생님은 분주히 체육관 안을 돌아다녔다. 체육관 앞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고 전교생이 선거 방송을 함께 시청할 예정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중요한 날이죠. 바로 여러분이 직접 한빛 초등학교의 회장을 뽑는 날입니다. 올해는 더욱더 특별한 선거입니다. 블라인드 선거로 치러지기 때문이죠. 외모, 인기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공약만 보고 뽑는 최초의 선거입니다. 앞으로 방송될 각 후보의 공약을 잘 경청하시고 마음에 드는 공약에 투표해주세요. 그럼 선거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바로 후보들의 영상이 틀어졌다.


로봇 가면을 쓴 첫 번째 후보의 동영상이 떴다.


“안녕하세요. 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한빛 초등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아이패드를 나눠주고 쉬는 시간마다 컴퓨터실을 개방하겠습니다…….”


로봇 목소리로 변조된 후보는 로봇처럼 딱딱하게 팔을 움직이며 공약을 발표했다.


“큭큭큭.”


너무 허무맹랑한 공약이라 생각한 것일까?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9번 후보인 린의 영상이 나왔다. 린은 고양이 마스크에 고양이 목소리로 변조했다.


“안녕하세요. 9번 후보입니다. 주변에 길고양이를 본 적이 있나요? 고양이의 수명은 10년을 훌쩍 넘지만 길고양이는 3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저는 학교 내에 고양이 급식소와 유기 동물 보호소를 설치해 봉사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순번을 정해 운영할 것을 제안합니다. 생명 존중과 동물 사랑을 직접 학교에서 실천한다면 동물과 슬기롭게 공존하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민아는 연습 때보다 더 차분하고 똑 부러지게 발표하는 린을 보자 안심이 됐다.


이렇게 총 10명의 후보 공약 영상이 지나가고 마지막 화면에는 모든 후보자의 가면 얼굴과 공약이 한 화면에 보이게 띄워졌다. 민아는 짧은 시간 안에 실수 없이 꼼꼼하게 준비한 선거도우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선거위원장인 도윤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모두 공약을 봤죠? 이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4학년 순으로 차례대로 투표소로 들어갔다. 투표를 마치자 선거도우미는 투표함을 들고 개표하는 책상으로 갔다. 모두 보는 앞에서 투표함을 뜯고 화면에 후보자별로 표수를 컴퓨터로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학교 너튜브 계정으로 1~3학년 교실에도 중계되었다. 누가 봐도 공작새와 고양이가 막상막하였다.


선거위원장인 도윤이가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선거는 한빛 초등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치른 블라인드 선거였습니다. 처음 치르는 선거인만큼 공정하고 즐겁게 선거를 치른 것 같아요. 다들 올해 학생회장이 궁금하시죠? 빨리 발표하겠습니다. 회장은 총 31퍼센트 지지를 받은 공작새가 1등을 했습니다. 공작새 후보 앞으로 나와 주세요.”


“뭐해? 얼른 나가야지.”


린은 옆에서 민아를 툭툭 치며 말했다. 린은 민아보다 더 상기되어 보였다. 체육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 힘차게 박수 쳤다. 민아는 주변의 박수 소리가 차단된 것처럼 진공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속을 걷는 것처럼 느릿느릿 체육관 앞으로 나갔다. 담임선생님도 민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장미와 서준이는 놀란 표정으로 민아를 돌아보았다.

도윤이는 웃으며 민아에게 마이크를 전달했다. 민아는 숨을 들이쉬며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6학년 2반 고민아입니다. 제가 공작새인데요, 저를 뽑아줘서 감사합니다. 제 공약에 많이 공감해 줘서 기쁩니다. 저는 매번 쇼트커트 때문에 두발 단속 때 걸렸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한빛 초등학교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반장도 아니고 인기도 없습니다. 아마 저를 처음 보는 학생들도 많을 거예요. 이렇게 제가 뽑힐 수 있었던 것은 블라인드 선거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에도 꼭 블라인드 선거 전통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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