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네팔 카트만두로 파견시 2013년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 '책 읽는 즐거움에 푹' 네팔 바그룽 독서캠프
오늘은 세이브더칠드런이 네팔 서부 바그룽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독서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바그룽은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네팔 중부 포카라에서 서쪽으로 좁고 굽이진 비포장 산길을 몇 시간이고 따라가야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에서도 특히 외진 곳으로 유명한 아띠까리촐 마을과 보방 마을 등이 오늘 말씀드릴 ‘독서캠프’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지요.
먼저, 아띠까리촐 마을에 사는 아홉 살짜리 소년 택라지를 만나볼까요? 택라지는 요즘 주말 아침만 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번쩍 눈이 떠집니다. 그리고는 독서캠프에 늦지 않기 위해 한달음에 학교까지 달려갑니다. 이곳에서 택라지는 평소 읽고 싶었던 이야기책을 마음껏 읽습니다.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 물어 하나하나 뜻을 배워가기도 하지요. 그동안 가난 때문에 읽고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택라지는 독서캠프를 다니면서 혼자서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휘력도 놀랄 만큼 늘어 독서캠프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100개의 단어 중 아는 단어가 11개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분에 55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택라지는 “예전에는 책이 보고 싶을 때면 형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독서캠프 덕분에 이제 혼자서도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사진/ 독서클럽을 통해 혼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택라지와 택라지의 어머니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해 9월 삼성꿈장학재단과 여러 후원자들의 지원을 통해 바그룽 지역 7개 학교에서 모두 28개 규모로 시작한 독서캠프는 이처럼 마을 아동들이 마음껏 찾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이자 어휘 공부, 토론 등을 통해 읽기 능력을 키우는 공부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독서캠프에 참여해 책을 읽고 있는 아동
독서캠프가 운영되기 전만 해도 이곳의 아이들은 교과서 이외의 책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산악지대에 드문드문 마을이 들어서 있다 보니 지리적으로 고립돼 정부 기관과 NGO의 활동이 쉽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주거와 위생시설은 물론, 교육에 대한 투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주민의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 마을에서는 농사철인 4월부터 10월이면 부모님은 농사일을 찾아 이주하게 됩니다. 아이들 역시 대부분 부모님을 따라 마을을 떠나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새로 이주한 마을에 학교가 있다 해도 부모가 일하는 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들을 돌봐야 해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지역별로 방학 기간이나 진도가 달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도 많지요.
사진/ 부다톡 마을 독서캠프의 독서 토론 시간
이처럼 좋아하는 책 한 권 마음대로 읽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이 곳 아이들에게 주말마다 열리는 독서캠프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독서 후 느낀 점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활동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토론 등도 독서캠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독서캠프를 통한 변화는 마을 주민들에게도 찾아왔습니다. 글 한 줄 읽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줄줄 책을 읽고 집에 와서도 책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을 본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을 위해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인데요. 아띠까리촐 마을을 비롯해 샤히콜라, 도가디, 차우라, 그리고 가디콜라 등 5개 지역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주말에만 진행되던 독서캠프를 매일 아침 열릴 수 있도록 직접 지원에 나섰습니다. 몇몇 학교에서도 독서캠프 프로그램을 본떠 매일 수업 중 30분~1시간씩 ‘여러분, 모든 일을 내려놓고 책을 읽을 시간입니다. (Dear, drop everything and read.)’라고 이름 붙인 독서시간을 시작하였고요. 특히 이 시간에는 ‘또래끼리 읽기’를 통해 고학년 아이들이 저학년 동생들의 책 읽기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생계를 꾸리는 데 바빠 아이들의 교육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이곳이 마을과 학교가 모두 나서 아이들의 ‘책 읽기’를 응원하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 독서캠프에 참여한 아동들의 모습
아띠까리촐 마을에 사는 시카르의 어머니도 이러한 변화의 당사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어려서 한쪽 시력을 잃은 후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던 시카르가 독서캠프를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카르의 어머니는 “공부에 흥미도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던 시카르가 독서캠프에 다닌 이후부터는 책을 많이 읽고 집에 와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며 “독서캠프에서 진행한 부모교육에 참석해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뒤로는 저도 아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도가디 마을 독서캠프에 참여해 놀이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이처럼 아이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도 독서캠프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운영은 그리 여의치 않습니다. 지역사회가 자체적으로 독서캠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이를 체계적으로 담당할 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 대부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고 지역 교육부의 재원도 부족하다 보니 필요한 책 구입과 자원봉사자 지원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부 캠프에서는 학부모들이 아동 한 명당 100루피(한화 약 1,300원)씩 자발적으로 운영비를 모금하여 충당하고 있지만, 이 비용마저 낼 수 없는 가정이 대부분입니다.
샤히콜라와 아띠까리촐 마을 등의 독서캠프에서 독서지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잘마티(여, 21) 씨는 “독서캠프가 계속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 독서캠프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고 마을에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네팔의 아동들이 손에 든 책을 놓지 않고 더 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함께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독서클럽 최고의 인기 도서 ‘뚱보와 날씬이’를 들고 있는 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