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한 풍류의 상징, 녹주건(漉酒巾)

by 노정

소탈한 풍류의 상징, 녹주건(漉酒巾)


'녹주건(漉酒巾)'이란 '술을 거르는 두건'이라는 뜻으로,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전해지는 고사에 따르면, 술을 몹시 사랑했던 도연명은 집에서 빚은 술이 향기롭게 익으면 그 맛을 보기 위해 지체 없이 머리에 썼던 갈건(葛巾)을 벗어 술을 걸렀다.

그는 술을 다 거른 뒤, 술기운과 찌꺼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두건을 다시 머리에 고쳐 쓰고는 유유자적하게 술을 즐겼다. 격식을 생명처럼 여기던 당시 사대부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파격적인 기행이었으나, 도연명에게는 술이 주는 즐거움과 내면의 자유가 형식보다 훨씬 중요했다.


이 일화는 단순한 기행을 넘어 몇 가지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칡베로 만든 소박한 갈건은 그의 청빈한 삶을 대변하고, 체면이나 격식이라는 속세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정신이 담겨 있다.

후대의 수많은 문인들은 도연명의 이 모습을 보며 권력과 명예를 좇는 고단한 삶 대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진정한 풍류를 발견했다. 오늘날 녹주건은 꾸밈없는 인간미와 소박한 자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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