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게, 그리고 인생의 풍류

by 노정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우수지주배, 좌수지해오)“

오른손에는 술잔을 들고, 왼손에는 게 집게다리를 쥐고서…


동양의 고전 속에서 풍류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중국 진(晉)나라의 호탕한 선비, 필탁(畢卓)이다. 그가 남긴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우수지주배, 좌수지해오)”라는 구절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의 형식과 구속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로망을 대변해 왔다.

이 이야기는 《진서(晉書)》 〈필탁전(畢卓傳)〉에 기록되어 있다. 필탁은 평소 술에 취해 정무를 돌보지 않을 정도로 술을 사랑했는데, 어느 날 인생의 참된 즐거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得酒滿數百斛船, 四時甘味置兩頭,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拍浮酒池中, 便足了一生矣."

"수백 섬의 술을 가득 실은 배를 얻어, 배의 양옆에 사계절의 맛난 안주를 갖다 놓은 채, 오른손에는 술잔을 들고, 왼손에는 게 집게다리를 쥐고서, 술이 든 배(酒船)에서 둥둥 떠다니며 노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일생은 충분하도다."


이 문장에서 핵심이 되는 '오른손에는 술잔, 왼손에는 게 다리'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넘어선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필탁은 당시 이부랑(吏部郞)이라는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권력이나 명예보다 한 잔의 술과 소박한 안주에서 삶의 완성을 찾았다. 이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무위자연을 추구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방달(放達)'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예로부터 게(蟹)는 찬 성질을 가졌고 술은 따뜻한 기운을 가졌기에, 미식가들 사이에서 게 집게다리는 술과 곁들이는 최고의 안주로 꼽혔다. 또한 여기서 나오는 '박부(拍浮, 물 위에 떠서 노님)'라는 표현은 술에 몸을 맡긴 채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묘사한 것이다.

필탁의 이러한 선언은 후대 문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 또한 그의 시에서 게 다리와 술을 언급하며 필탁의 풍류를 흠모하기도 했다.

현대인들에게 이 전고는 '자신만의 확실한 행복'을 찾는 태도를 시사하기도 한다. 거창한 성공이나 막대한 부가 아니더라도, 배 위에서 술잔과 게 다리 하나로 ‘인생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족(自足)의 마음이야말로 필탁이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풍류의 핵심일 것이다.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우수지주배, 좌수지해오)'의 주인공인 필탁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줄 나만의 '술'과 '게 다리'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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