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삼여(讀書三餘)

by 노정

바쁜 일상 속에서 찾아낸 나만의 한가로운 시간, 독서삼여(讀書三餘)


바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독서는 늘 숙제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현대인의 가장 흔한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중국 위나라의 학자 동우(董遇)는 우리에게 독서 시간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 가지 여유로운 때에 독서를 한다는 '독서삼여(讀書三餘)'입니다.


독서삼여에 대한 전고 기록을 살펴보면 옛사람들이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다루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위략 魏略>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동우(董遇)는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자 마땅히 세 가지 여유인 삼여(三餘)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마땅히 세 가지 여유로써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 세 가지 여유의 뜻을 물으니 동우(董遇)가 답하기를,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이고, 밤은 하루의 남은 시간이며, 비가 오는 때는 잠시 얻는 여유로운 시간이다(讀書當以三餘, 或問三餘之意. 遇言, 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也.)"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겨울과 밤, 그리고 비 오는 날은 생산적인 농사일을 잠시 멈추어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인들은 이 멈춤을 단순한 휴식이나 게으름으로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체적 노동을 할 수 없는 이 남겨진 시간을 정신적 풍요를 채울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학문은 단순히 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는 수양의 과정이었습니다.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고요한 겨울밤이나 처마 끝을 적시는 빗소리는 책 속의 문장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몰입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가치를 찾아내려는 선인들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하지만 동우(董遇)가 말한 논리를 지금의 일상에 대입해 본다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독서삼여가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잠시 얻을 수 있는 휴가 중 짧은 자투리 시간, 혹은 공휴일이나 약속이 취소된 시간에 우연히 얻게 되는 빈 공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삼여 중 하나는 바로 밤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 내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망 속에 머물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에 자신을 노출합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고, 깊은 사유의 기회를 앗아가기도 합니다. 진정한 밤의 여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디지털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침대에 누워 무의미하게 화면을 넘기는 대신,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장을 넘기는 그 몇 분의 시간이야말로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소중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 됩니다. 결국 독서란 시간이 흘러넘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남겨진 시간을 붙잡는 능동적인 선택의 영역입니다.


독서삼여의 교훈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으라는 재촉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관리하라는 완곡한 권유에 가깝습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을 채우는 시간은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일상 속에는 어떤 여백이 숨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좋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단 몇 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동우(董遇)가 말한 그 깊은 독서에 대한 지혜의 바다에 발을 들인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삼여(三餘)를 찾아내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독서는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남는 시간을 만드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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