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매화와 삶의 향기

by 노정

봄을 알리는 매화와 삶의 향기


겨울의 끝자락, 차가운 바람 속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있다. 바로 매화다. 다른 꽃들이 따뜻한 햇살을 기다릴 때, 매화는 눈과 서리를 견디며 살며시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매화를 봄을 알리는 꽃이라 불러 왔다.


송나라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매화의 기개를 이렇게 노래했다.


“담장 모퉁이 몇 가지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어 있네.”

(牆角數枝梅,凌寒獨自開)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매화는 묵묵히 꽃을 피우며 봄이 이미 곁에 와 있음을 알린다.


매화는 그 수려한 기품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하다. 옥과 같은 뼈대와 얼음 같은 살결을 지녔다 하여 옥골빙기(玉骨氷肌)라 불렸고, 눈 속에서도 홀로 향기를 뿜어낸다 하여 설중군자(雪中君子)라 칭송받았다. 이러한 이름들 속에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고결한 인품을 닮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은은한 매화의 향기는 고난을 견딘 뒤에 얻어지는 결실이기도 하다. 당나라의 선승 황벽희운(黃檗希運)은 이를 두고 이렇게 읊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겪지 않고

어찌 코를 스치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不經一番寒徹骨,怎得梅花撲鼻香)


매화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건넨다. 우리는 흔히 남들보다 빨리 피어나기를 원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에 조급해하곤 한다. 그러나 매화는 앞다투어 피어나는 따뜻한 계절을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척박하고 외로운 시기에 홀로 피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를 완성한다.


차가운 인고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매화의 품성은, 시련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


매화가 아름다운 것은 단지 꽃이 피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침묵하며 내실을 다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독한 계절을 온몸으로 견뎌 냈기에 그 향기는 다른 어떤 꽃보다도 맑고 깊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때로는 겨울 같은 시기가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 또한 매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피어날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담장 모퉁이에 피어난 매화처럼, 그 누군가의 삶에도 언젠가 아름다운 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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