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떨어진 꽃잎에서, 화무십일홍을 읽다.
엊그제만 해도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세상을 덮었던 벚꽃이었습니다. 봄바람 한 자락에 마음을 설레게 하던 그 화려함이 어젯밤 내린 비에 그만 길바닥 위로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초록빛 보도블록 위에 점점이 박힌 분홍 꽃잎들은 마치 누군가 정성스레 수놓은 비단 같기도 하고, 봄이 급히 떠나며 남긴 마지막 안부 인사 같기도 합니다.
이 풍경을 마주하니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나직한 읊조림이 새어 나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 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그의 시 〈납전월계(臘前月季)〉에서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즉 ‘다만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다고 말하네’라며 세간에 떠도는 말을 빌려 자연의 이치를 읊었습니다. 이후 명나라의 소설 《수호전(水滸傳)》에서는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라 하여, ‘꽃은 백일 동안 붉은 것이 없고 사람은 천 일 동안 좋을 수 없다’는 구절로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화무십일홍, 이 짧은 다섯 글자에는, 화려함 뒤에 가려진 냉철한 섭리와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을 권력의 허망함이나 부귀영화의 덧없음에 비유하곤 합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하여, 세상을 호령할 듯한 기세도 결국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비에 젖어 땅바닥에 붙어버린 벚꽃잎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비단 허무함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라리 ‘절정의 겸손’에 가깝습니다.
꽃이 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열흘 동안 온 힘을 다해 붉었으니, 이제는 다음 생명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꽃잎이 떨어진 저 자리에는 머지않아 꽃보다 싱그러운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날 것이며, 뜨거운 여름의 햇살을 받아 내실을 다질 것입니다. 그러니 화무십일홍은 “모든 것은 끝난다”는 절망이 아니라, “모든 것은 변하며, 그 변화 속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바닥에 붙은 꽃잎들은 비에 젖어 한층 더 선명한 빛깔을 내뿜고 있습니다. 만개했을 때의 도도함은 사라졌지만, 대지에 몸을 밀착시킨 채 마지막까지 자신의 색을 지키는 모습이 지극히 평온해 보입니다. 엊그제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오늘의 낙화(落花)에는 마음을 얹어 봅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귀하고, 지는 꽃이 있기에 다시 올 봄이 기다려지는 법입니다. 비록 벚꽃은 비에 젖어 떨어졌으나, 내 마음속에는 그 열흘의 붉음이 오래도록 지지 않는 그림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꽃은 져도 그 향기는 바람에 남고, 계절은 가도 그 기억은 문장이 되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