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항아리 뚜껑이 되지 않게 하라

by 노정

책, 항아리 뚜껑이 되지 않게 하라


중국,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가 쓴 시 《서회(書懷)》의 한 구절이 유독 시선을 붙잡고 마음에 울림을 준다.

書卷常開櫝1), 莫教作瓦盆蓋

책은 나무 상자에서 꺼내 항상 읽도록 하여,

항아리 뚜껑이 되지 않게 하라.


‘항아리 뚜껑’이라니.

이 낯설지만 절묘한 비유가 마음에 강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종종 책을 읽지만,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책과 멀어진다.

책을 장식처럼 책장에 꽂아두거나, 낡은 상자 속에 넣어둔 채 잊어버리는 일도 많다.


육유는 말한다. 지혜의 보고인 책을

쓸모없이 묵혀두지 말라고.


책 속에는 삶을 다듬는 지혜가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사는 가치들이 고요히 머물러 있다.

어쩌면 책 속의 작은 문장 하나가

삶을 바꿀 만한 통찰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은 살아 있어야 한다.

읽히고, 곱씹히고, 마음과 부딪히며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책은 제 몫을 다하게 된다.


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손이 닿는 자리, 눈길이 머무는

순간에 있다.

책장을 넘기며 나를 돌아보고, 한 줄의 문장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하며, 그것을 통해 내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책과 내가 나누는 가장 깊은 대화일 것이다.


이제, 다시 책을 꺼내자.

책장을 열고, 마음도 함께 열자.

항아리 뚜껑처럼 닫힌 채 잊히는 책이 아니라, 오늘도 나와 함께 숨 쉬며, 지금의 나를 새롭게 바꿔줄 문장을 다시 만나보자.


1) 書卷常開櫝…이 부분은 알아듣기 좋게 의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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