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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Nov 13. 2018

지는 해가 아름다운 오래된 성마을

중국 허베이성 위현 시구바오촌

시구바오촌(西古堡村)은 허베이성(河北省) 위현(蔚县)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성마을이다. 시구바오촌이란, 연경(베이징의 옛 이름) 서쪽(西)에 있는 오래된(古) 작은성(堡壘)에 있는 마을(村)이란 뜻으로, 제법 높게 쌓인 작은 성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작다고만 할 순 없는 게 경복궁보다도 커보일 정도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갑작스레 펼쳐지는 웅장한 성에 놀라고, 성안으로 들어가면 정말이지 너무도 평범하고 작은 마을 규모에 놀라게 된다.



시구바오촌 고성은 명나라 초기에 세위졌다. 명나라는 14세기에 주원장이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한족의 나라다. 바이두(百度; baidu.com)로 검색해보니 명나라 초기인 14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아직까지 연경 인근(지금의 허베이성)에서는 북방 유목민과 한족의 전쟁이 빈번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명나라가 연경 인근 마을들에 성들을 지었는데, 이 시바오촌이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성문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600년이라는 시간의 간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파괴된 것도 거의 없고, 새로운 것도 거의 없다. 마을 입구에는 관광 개발을 하려고 시도는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는지 썰렁한 박물관이 덩그란히 놓여있고, 자리를 뜬 노점상의 폭죽 가판이 놓여있다. 박물관과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유리탑을 지나면, 마을 자체가 그냥 성이다.


성 안에 들어서면 옛날 방어용 성의 내부 구조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내가 갔을 땐 마침 해가 질 즈음이었는데, 성벽 저너머 들판에서 지는 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석양이 비추는 마을의 풍광이 마을 안의 노인들의 삶을 지켜주는 듯 했다. 마을에는 여느 시골 마을들처럼 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외롭고 한가로운 표정으로 거닐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탁구를 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중년 부부는 성벽 아래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는데,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었다.

 


중국에서 고성이나 고진 나름대로 많이 돌아다녀봤는데, 확실히 허베이성이나 산시성 쪽의 고성, 고진들은 개발이 덜 되어 정말 옛날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든다. 저 유명한 다리고성(大理古城)이나 리장고성(丽江古城), 고북수진(古北水镇) 같은 곳에 가면 관광 상품도, 관광객도 즐비한데 이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쓸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이쪽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성 망루에 올라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중국 문화유적의 풍부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토록 많은 유산이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화려한 빌딩숲이 만든 허장성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이 여전히 '대국'일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인 것 같다.  많은 중국인들은 화려한 장식과 꽤 그럴듯한 세련됨(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키치하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을 좋아하고, 이런 옅은 토색 일색의 풍경은 즐겨찾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이 옛성 마을이 내가 본 여느 마을들보다 아름답다.

 


시구바오촌은 2006년에야 중국 국가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됐다. 그 전까지 멀쩡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지정 이후에도 별 개발이 안 됐다는 점도 놀랍다. 왜 그럴까? 아마도 중국에 현존하는 이런 고성이 1000개에 이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 마을과 고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마냥 낭만적으로 격찬하는 것이 팔짜좋은 소리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성 안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너무 허름해서 무너져가는 집도 많고, 상당수의 집들은 비어 있기도 하다. 추수 기간이 지나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할일이 거의 없어보였다. 이 마을의 생존은 관광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물며 이런 오래된 성 하나 없는 시골마을은 어떨까 싶다.


관광객이 이 마을을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베이징에서 허베이성 위현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위현터미널에서 이 고성으로 오는 버스를 타면 될 것 같다. 아니면 택시를 타면 되는데 20분 가량 걸린다.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찾아오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고생하며 와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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