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명교 Sep 10. 2019

주제 파악

얼마 전에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실린 두보의 시를 봤다. "장안을 떠나 봉선현에 가다가 오백글자를 읊어봄 自京赴奉先县咏怀五百字" 대충 이런 제목의 시였는데, 시라기보다는 일기 같은 500자 소회였다. 요즘 식으론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랩 가사 같은 글이었는데, 1250년 전 글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분노, 좌절, 슬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렇게 말하면 조선말기 할아버지 선비 같지만, 내 마음이 꼭 그랬다.


이 시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은 이것이다.


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榮枯咫尺異
惆悵難再述


고관들의 대문 안에 술과 고기 냄새 가득한데,

길가에는 얼어 죽은 해골들이 나뒹군다.

영화와 빈곤이 문 안팎으로 이렇게 다르니,

너무나 서글퍼 다시 적기가 어렵구나.


작년 8월 청두成都에 갔을 때, 두보초당杜甫草堂에 간 적 있었다. 중국 애들 6명이랑 돌아다녀서 신경도 쓰였고, 그냥 넓은 정원이구나, 하는 생각말곤 별 생각이 없었다. 만약 이 시를 읽은 후였다면 두보초당을 보는 내 시선도 달랐을지 모르겠다.


요즘 미칠 듯이 우울한데 탈출구를 모르겠다. 아니, 알것도 같지만 모진 과정들이라 시간이 필요하다. 단행본 계약도 했고, 원고 청탁도 유난히 자주 들어오며, 많은 사람들이 내게 뭔가 기대하는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엔 모든 것이 엉망이고, 나를 망치고 있다.

 
나는 이제 알았다. 빈약한 현실에 비해 내 꿈은 너무 거대하다는 것을. 격정적인 경험들이, 태산처럼 좋은 책들이, 좋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꿈을 품을 수 있게 해줬지만, 지금의 난 이제 그런 꿈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유튜브에서 어떤 자기계발론자가 떠드는 이야길 들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미치도록 초라해보이는 참혹한 우울을 견디려면 자신의 처지를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 헐거운 근거 위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어찌됐든 사람도 하나의 짐승이다. 본능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는 훈련을 한다. 내 무의식도 그걸 알았던 게 아닐까. 몇 년 간 나는 오직 글과 행동만 제외하고 지독한 냉소를 품고 있었다. "난 아무 기대가 없어"라고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씨니컬 연습은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모르겠다. 얼마 전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난 아직 이 터무니 없이 거대한 꿈 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버리고 싶다. 내 초라한 삶이 이런 꿈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냥 쿤밍 북부에 있는 작은 에어비앤비 주인, 혼자 소박한 이야기를 하는 안팔리는 책의 저자 같은 사람, 혼자 밤새 비소리를 듣고, 다음날 아침 100km 쯤 떨어진 낯선 도시로 베낭메고 가버리는 외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20년 묵은 내 거대한 꿈은 무의식 저편으로 묻고 싶다. 주제 파악을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의 재일조선인 귀국 프로젝트의 실체를 파헤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