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다저 블루' 커쇼, LA로 돌아오다

by 박민규

지난 11일(한국시간), 멈춰 있던 메이저리그의 시계가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99일간 진행됐던 직장 폐쇄가 종료되면서 소속팀을 찾지 못했던 FA 선수들의 계약이 쏟아진 것이다. 지난해 사이영 컨텐더가 되는 대반전을 만들어내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한 카를로스 로돈(2년 4400만 달러)과 여전히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인 안드렐튼 시몬스가 1년 400만 달러 규모로 컵스와 계약하는 등 여러 소식들이 이어졌지만 당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단연 다저스와 클레이튼 커쇼의 재계약이었다.


지난해 시즌 종료 후 커쇼에게 남은 행선지는 다저스 잔류와 고향팀 텍사스로의 이적이었다. 리빌딩을 마친 텍사스는 코리 시거(10년 3억 2500만 달러), 마커스 시미언(7년 1억 7500만 달러), 존 그레이(4년 5600만 달러)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재정비했다. 그러나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선 여전히 약점으로 꼽히는 선발투수진 강화가 반드시 필요했고 텍사스는 그에 대한 구심점으로 텍사스 댈러스 출신이자 FA 신분을 획득한 커쇼를 눈 여겨 보고 있었다. 커쇼 역시 텍사스와의 계약 또한 고려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커쇼는 다저스에 남았다. 팀 동료였던 시거가 텍사스로의 동행을 제안했지만 그럼에도 커쇼는 다저스 잔류를 선택했다. 커쇼의 이번 계약 규모는 1년 1700만 달러. 연평균 3100만 달러에 달했던 지난 계약(2019-2021시즌, 3년 9300만 달러)과는 믿기 어려울 만큼 확연히 낮아진 조건으로 이는 고향팀에서 뛰는 것보다 친정팀과의 유대와 우승 기회가 더 강하게 작용했으며 만족스러운 제의는 커녕 퀄리파잉 오퍼도 받지 못한 커쇼가 FA 재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클레이튼 커쇼, 커리어 연봉 및 계약 정리

2008시즌 39만 달러

2009시즌 40만 4000달러

2010시즌 44만 달러

2011시즌 50만 달러

2012-2013시즌 2년 1900만 달러

2014-2020시즌 7년 2억 1500만 달러

2019-2021시즌 3년 9300만 달러

2022시즌 1700만 달러


커쇼는 현재의 다저스 그 자체를 상징하는 선수다. 2008년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 샌디 코팩스의 재림이라 불린 커쇼는 다저스에서만 14년을 뛰며 구단 역사상 투타를 합쳐 가장 높은 71.5의 통산 bWAR(승리기여도)을 기록했다. 지난 2010시즌부터 팀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커쇼는 이후 사이영상(2011, 2013-2014)과 MVP(2014)를 수상하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2020시즌, 유일한 아쉬움이었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명예를 손에 넣는 쾌거를 이루었다.


눈 여겨볼 점은 MVP와 사이영상 수상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모두 한 팀에서 이뤄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팀에서 MVP와 사이영상 수상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투수는 모두 8명. 그 중 팀 선배인 돈 뉴컴과 코팩스에 이어 해당 기록을 세운 커쇼는 1993년 이후 유일한 달성자이기도 하다. 커쇼의 해당 기록 달성은 다른 7명의 투수보다 그 의미가 한층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구단과의 FA 계약 및 트레이드 등을 통한 이적이 과거보다 더욱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야구에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또한 커쇼는 통산 200승과 3000탈삼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기록인 200승과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메이저리그 투수는 모두 18명. 그렇지만 200승과 3000탈삼진을 한 팀 소속으로 달성한 투수는 4명에 불과하다. 이에 200승에 15승, 3000탈삼진에 330개가 남은 커쇼가 올 시즌 후 다른 구단으로 둥지를 옮기지 않는다면 한 팀에서 200승과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하는 메이저리그 역대 다섯 번째이자 최초의 다저스 투수라는 타이틀을 노려볼 수 있다.


한 팀에서 200승-3000탈삼진 동시 달성 투수 명단

월터 존슨(워싱턴 세내터스) : 417승-3509탈삼진 *미네소타 전신

밥 깁슨(세인트루이스) : 251승-3117탈삼진

스티브 칼튼(필라델피아) : 241승-3031탈삼진

존 스몰츠(애틀랜타) : 210승-3011탈삼진


더욱이 커쇼의 활약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는 평균자책점과 같은 비율 스탯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맥스 슈어저(메츠), 잭 그레인키(캔자스시티)와 함께 후일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커쇼는 통산 평균자책점이 2.49, WHIP가 1.004이며 시대와 구장의 차이를 반영하는 조정 평균자책점은 155에 달한다. 이는 1920년 라이브볼 시대 시작 이래 통산 2000이닝을 넘긴 투수 가운데 역대 최고 기록이다. 커쇼는 FIP 또한 2.77로 코팩스(2.69)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 커쇼는 더 이상 전성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2011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평균자책점이 2.10이었던 커쇼는 지난 3년간 평균자책점이 3.06에 그치고 있다. 피홈런 허용 또한 크게 늘면서 2011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0.6개였던 9이닝당 피홈런은 지난 3년간 1.3개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다른 투수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적이지만 커쇼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커쇼가 전성기 시절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다. 2010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6시즌 동안 연평균 32경기에 등판해 222이닝을 소화한 뛰어난 이닝이터였던 커쇼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첫 장기 이탈을 경험한 2016시즌 이후 단 한 번도 200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2016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허리, 이두근, 어깨, 팔꿈치 등 매해 부상에 시달린 커쇼의 연평균 소화 이닝은 157이닝에 불과하며(2020 단축 시즌 제외), 규정 이닝을 넘긴 시즌은 2017시즌(175이닝)과 2019시즌(178⅓이닝) 단 두 번 뿐이다.


커쇼는 이미 20대에 많은 공을 던졌다. 20세 시즌부터 29세 시즌까지 커쇼가 기록한 이닝은 1935이닝. 이는 1980년 이후 20대 투수들이 소화한 이닝 순위에서 로저 클레멘스(2031이닝)에 이어 8위에 해당한다. 여기에 포스트시즌(20-29세 122이닝)까지 더한다면 커쇼가 20대 시절 던진 이닝은 2057이닝으로 주행거리 이론에 따르면 신체가 지치고도 남을 수준이다. 한편 놀란 라이언 또한 29세 시즌까지 소화한 이닝이 1935이닝으로 커쇼와 같다. 그러나 라이언이 30세 시즌부터 42세 시즌까지 3451이닝으로 연평균 203이닝을 던진 반면 커쇼는 30세 시즌부터 33세 시즌이었던 지난해까지 519⅔이닝으로 연평균 130이닝에 불과하다.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고 단축 시즌이 끼어 있음을 감안해도 급격한 추락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커쇼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바로 허리 부상이다. 일반적으로 이중 키킹 동작을 사용하는 투수들은 허리 부상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커쇼의 경우 두 번째 키킹에서 스트라이드로 향하는 동작에서 허리의 굴곡이 유독 두드러진다. 결국 이러한 동작이 이미 많은 공을 던진 커쇼의 허리에 큰 부담을 줬으며 끝내 기능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어깨 혹은 팔꿈치까지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부상의 여파는 패스트볼의 구속 저하로 이어졌다. 2017시즌, 커쇼는 포심의 패스트볼이 커리어 처음으로 93마일 밑으로 떨어졌다(92.8마일). 그해 7월 말 허리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93마일을 유지했던 포심은 그러나 부상 복귀 후 6경기에서 평균 92.5마일에 그쳤다. 그리고 커쇼는 단축 시즌인 2020년을 제외하고 2018시즌 이후 포심의 시즌 평균 구속이 91마일을 넘지 못하고 있다(2018시즌 90.8마일/2019시즌 90.3마일/2021시즌 90.6마일).


단조로운 볼배합을 가지고 있는 커쇼에게 포심의 구속과 구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힘이 떨어진 포심은 곧 타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2010시즌부터 2016시즌까지 평균 93.6마일이었던 커쇼의 포심은 피장타율 .353과 53.9타수당 1피홈런을 기록한 매우 위력적인 구종이었다. 그러나 평균 구속이 91.5마일까지 떨어진 2017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피장타율은 .461까지 치솟았고 21.1타수당 홈런 한 개를 맞으면서 포심을 던졌을 때 허용한 피홈런은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커쇼는 더 이상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고무적인 점은 커쇼가 변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커쇼는 지난해 그 어느때보다도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지난해 커쇼의 슬라이더 구사율은 47.6%로 처음으로 포심의 구사율을 넘어섰을 정도로 가장 높았다. 그리고 커쇼의 슬라이더는 여전히 위력적이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커쇼의 슬라이더 피안타율과 헛스윙 비율은 마지막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낸 2017시즌(.213/44.6%)과 비슷한 .198과 44%였다. 게다가 지난해 루크 잭슨(애틀랜타), 디에고 카스티요(시애틀)와 함께 베이스볼 서번트 기준 슬라이더 구종 가치 -15를 기록하면서 리그 전체 1위에 오른 이는 다름아닌 커쇼였다.


투수의 본질적인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바로 탈삼진/볼넷 비율이다. 그리고 최근의 커쇼는 분명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탈삼진/볼넷 비율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시즌 동안 커쇼가 기록한 탈삼진/볼넷 비율은 7.10개로 같은 기간 18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압도적인 1위이며(2위 네이선 이볼디 5.88개) 자신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2011시즌부터 2017시즌까지의 5.74개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는 커쇼가 새롭게 모색한 전략이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1988년생인 커쇼는 올해로 34세 시즌을 맞이하며 어느덧 선수 생활의 황혼기로 나아가고 있다. 부상으로 인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 듯한 모습을 보인 커쇼는 다시 한 번 건강한 시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저스의 상징인 커쇼의 올 시즌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기록 참조 : 베이스볼 레퍼런스, 베이스볼 서번트, 스포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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