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저도 하기 힘든 건 안 하고 싶으니까요.
컨설팅을 다니다 보면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런 말이었다.
"우리 상품을 잘 팔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 틀어박혀서 연구와 생산만 하고 싶어요. 그렇게 안 된다는 건 저도 잘 알지만... MBTI가 대문자 I라... 소원이 그래요."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대표님은 한 명이 아니었다. 특히 연구나 제조에 특화된 대표님들에게서 비슷한 하소연을 꽤 들을 수 있었다. 표현만 조금씩 달랐을 뿐, 감정의 결은 같았다.
MBTI를 믿든 밎지 않든, 이러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온다는 건 생각해볼만 하다.
위와 같은 말을 했던 대표님들은 마케팅을 하는 게 싫다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상품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케팅 하는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고 나를 소개하면, 대단한 무언가를 발견한 표정이었다.
그분들이 하고 싶지 않은 건 따로 있었다. 낯선 자리에 나가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고, 팔고, 설득하는 일이다. 연구하고, 개발하고, 만드는 데 집중한다면 더 좋은 상품이 나올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즈니스를 위해 본인답지 않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 앞에 존재해야 하는 상황이 지친다는 거였다. "소원이 그래요"라는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해야 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현실은 힘들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의, 조용한 고민이었다.
작은 회사일수록 대표가 모든 걸 해야 한다. 1인기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연구도, 생산도, 품질 관리도, 고객 응대도. 그리고 마케팅까지 다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일이 많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만드는 일과 파는 일은 요구하는 뇌의 모드가 다르다. 만드는 일은 집중과 몰입을 요구한다. 디테일에 오래 파고드는 힘, 완성도에 대한 집착, 외부 자극을 차단한 채 안으로 파고드는 에너지 등일 것이다.
반면 파는 일은 외부를 향해 에너지를 내뿜는 일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노출시키고,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대표님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매일, 대부분 혼자 해야 하는 게 문제다. 그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만드는 일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파는 일도 제대로 못 한다. 둘 다 어중간해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좋은 기술과 좋은 상품은 알려지지 못한 채 조용히 묻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경험적인 것이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대표님들을 만났을 때 대부분 상품의 퀄리티가 좋았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기술, 재료에 대한 고집, 완성도에 대한 기준. 그 안에 담긴 밀도가 보였다.
즉 문제는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알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마케팅에 대표님들이 두려움과 조급함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들을 보았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더 많이 알려야 하니까, 대표님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SNS도 하고, 영상도 찍고,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우리 거 좋아요'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은 비즈니스에 따라, 기업(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항상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앞서 유형의 대표님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지속 가능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이분들이 가장 잘하는 걸 오히려 갉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이러한 대표님에게 필요한 건, Push가 아니라 Pull이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나서는 게 내키지 않아도 알려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Push는 스스로 먼저 나가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광고, 직접 영업, 지속적인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즉 이를 위해 본인의 에너지를 계속 쏟아부어야 한다. 대표님이 모든 파이프라인의 중심에 서야 한다.
Pull은 반대다. 상품과 브랜드 자체가 사람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구조다. 한 번 경험한 사람이 자기 만족에 기반해 주변에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검색했을 때 발견하고, 기쁨을 공유한다. 그러다 보면 콘텐츠가 쌓이면서 신뢰가 만들어진다.
즉 대표님이 매번 나서지 않아도, 브랜드가 대신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게 브랜딩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이 대체로 맞는 게, 덜 화려하거나 느려 보일 수는 있어도 더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끌어당기는 전략에는 명확한 단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사실 끌어당기는 구조를 만드는 건,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브랜드가 쌓이는 데는 콘텐츠가 필요하고, 콘텐츠가 신뢰로 이어지는 데는 반복이 필요하고, 그 신뢰가 구매로 이어지는 데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매출이 급하다면, 이 방식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매출이 급하고, 성격이 급하고, 여러 사정이 있는 대표님께는 이러한 방법을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전략은 '묵묵히 함께 버티는 시간'이 전제가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대표님들 중, 이 방향으로 오래 함께 했던 경우에는 — 어느 순간부터 흐름이 바뀌는 걸 느꼈다. 대표님이 먼저 나서지 않아도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처음 온 고객이 '어디서 들었다'며 찾아오고, 브랜드 이름 자체가 신뢰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오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점이 오기까지는 같이 노력하고 기다려야 한다.
"소원이 그래요"라고 했던 말, 이건 완전히 불가능한 소원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가치가 세상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고 싶다.
* 이 글은 실제 컨설팅 현장에서 만난 대표님들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습니다.